[조은별] 헤비 기둥 뒤편에서 무대 위 까지

 

“네? 글이요? 제가요? 음악인생을 주제로요?”

 

 

근무 중 풍경. 저는 믹서 켜고 끄는 것도 서투른 사람인데요?

 

 요새 일 복이 장르를 막론하고 터지는 중이긴 한데, 이번 전화를 받고는 약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쩌다 공연도 종종 하고, 어쩌다가 공연단체에서 일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뮤지션이라 칭하고 싶지 않은 나한테 ‘음악인생’이라는 거창한 단어라니?

 

“제 음악 인생이랄 게… 애초에 음악적 능력이 모자란데 음악적 일을 하고 있는 게 요즘 딜레마여서요...”

 

“개인적인 얘기 풀어놓으시면 재밌을 것 같아서 연락드린거에요. 은별씨는 관객으로 덕질하다가 공연도 하고 일까지 하게 된 케이스잖아요. 덕업일치라고.”

 

 어… 그건 그렇긴 한데……

 

“아니 근데 덕질을 덕질이라고 원고에 막 써도 되나요?”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은별씨 마음대로 재미있게 써 주세요. 흐허허.”

 

“흐허허. 편하게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아무튼 맘대로면 일단 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썼다. 대충 부제를 붙이자면 ‘~클럽헤비 기둥 뒤 공간의 쭈구리였던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간 건에 관하여~’ 정도가 되겠다.

 

*덕질 : 특정 대상이나 방면에 집착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오덕후’, ‘덕후’ 등으로 부르는데, 그 ‘덕’과 행위를 뜻하는 ‘~질’이 합쳐진 단어. 좋아하는 것을 맘껏 좋아하는 것이다.

* 덕업일치 : ‘덕질’과‘직업’이 일치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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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에 발도 안 닿던 작은별 시절

 

 

 나는 장로님과 권사님의 손녀이자 집사 부부의 장녀로 태어나 이 아이를 훌륭한 반주자로 키워 교회를 섬기게 하겠다는 온 집안의 소망 아래 피아노 학원에 보내졌다. 그렇게 어릴때부터 악기를 만지는 행운을 누리며 자랐지만 안타깝게도 그 딸의 관심과 취향은 늘 교회 밖에 있었다. 

 

 헌금 내라고 받은 용돈을 냉큼 들고 교회 근처 대여점에 숨어 <오디션>, <NANA>, <BECK> 등의 만화를 읽고, 클래식 음악을 시켜놨더니 클래시컬한 ‘나이트위시Nightwish’같은 걸 들으며 인터넷 음악동호회 카페에 들락날락하던 딸은 밴드에 로망을 품은 덕후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학업과 입시에 눌려 차곡차곡 적립만 되어가던 로망은 수능을 끝내자마자 달려간 첫 공연-심지어 공연장소는 ‘대구학생문화센터 대공연장’이었다-에서 ‘디어클라우드’의 노래에 맞춰 떼창을 하며 펑 터져버렸고, 독실하고도 엄한 부모님께서 락 페스티벌에 가는 걸 허락하시지 않자 오로지 락페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인생의 첫 가출을 저지르며 그렇게 덕질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온스테이지> 업로드를 기다리며 좋아하는 밴드의 신보가 나오면 친구들과 밤새 얘기를 나누곤 했고, 기회만 되면 서울로 올라가 홍대에서 밤 새며 공연을 봤다. 락 페스티벌이 열리면 주말 내내 노숙해가며 공연을 보고 슬램으로 얻은 피멍이 가득한 지친 몸으로 5시간 동안 새벽 무궁화호를 타고 대구로 돌아와 바로 월요일 1교시 수업을 출석하기도 하는 열정적인 이십대 초반의 덕질 라이프였지만, 그때 내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홍대’로 통칭되는 것들이었다. 대구나 부산 등 서울이 아닌 곳에도- 대전, 춘천 등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에도 재밌는 공연이 있다 하면 냉큼 달려가서 놀곤 했지만, 결국 그 ‘재밌는 라인업’의 기준과 종류는 기존과 비슷했다. 홍대 클럽, ‘서울’ 뮤지션, 락페 메인 무대에 서는 팀들. 

 

 대구에도 클럽이 있고 ‘대구 밴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즐기는 입장에서도 정보를 얻거나 면면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접할 기회 자체가 희미한 느낌이라고 할까, 조금 유리되어 있는 느낌이 있었다. <클럽 헤비>를 처음 간 것도 로컬 공연이 아니라 ‘검정치마’, ‘게이트 플라워즈’ 등 타 지역 팀의 전국 투어 장소로서 접한 거니까.

 

 

 그럼에도 공연을 다니면서 언뜻 보이는 ‘로컬 씬’은 꽤 매력적이었다. 클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수많은 낯선 이름의 밴드 스티커와 매주 새로운 공연의 존재를 알리는 포스터들, 관객 중에서 종종 보이던 서로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같은 사람들. 내 가방에 달린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의 핀버튼을 보고 서울 친구들처럼 “장기하 노래 제목이네. 너 장얼 팬이야?”라는 물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거 ‘오무히’ 굿즈인가요?”라고 물어오는 이들.

 

 

 그렇게 막연한 궁금증을 키워 가던 어느 날, 처음으로 모르는 지역 팀들만 있는 공연엘 갔다. 팀 이름이 귀엽다는 소소한 이유로 클럽 헤비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 날이 내 덕질 인생의 또다른 터닝 포인트라는 걸 몰랐다. 막상 갔더니 다들 모르는 팀에 모르는 음악들, 나만 모르고 자기들끼리는 다 아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쭈뼛쭈뼛거리며 기둥 뒤에서 관람하던 내게 무대 위 뮤지션들이 손짓하고 말을 걸었다. 

 

 

“나와요, 같이 놀아요!”

 

 

 계속 쭈뼛거리는 내게 어느 순간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같이 웃고 떠들고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가 되어 헤비를 빙빙 돌았다. 공연이 다 끝나고, 들뜬 숨을 몰아쉬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덕통사고 당했네.’

 

*덕통사고 : ‘덕’+‘교통사고’. 사고처럼 피할 수 없이 덕질에 빠지게 되는 모먼트.

 

‘스카레톤’ 공연 때 사진. 그땐 몰랐다, 몇 년 뒤에 나도 그 무대 위에서 이러고 있을 줄은.

 

 

 로컬씬 덕질은 또 새로운 재미였다. 더 밀접한 거리에서 자주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무대 위 사람들은 뮤지션인 동시에 나와 같은 지역사회를 공유하며 사는 동네 이웃이었다. 어떤 이들은 음악적 교류를 넘어 친구가 되었고, 또 다른 장르와 취향을 공유하는 매개자가 되기도, 어느 때는 함께 일을 하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친구가 앨범 녹음을 하는 곳에 코러스를 떠들썩하게 넣으러 놀러갔다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유로 갑자기 보너스 트랙의 반주를 하기도 하고, 나중엔 그 친구들이랑 진짜로 밴드도 하고, 공연도 하고, 앨범도 내고, 발매기념공연에 투어도 해 보고, 의미 있는 기획에 재밌겠다고 호응 한 마디 했다가 붙잡혀서 일도 잔뜩 해보고, 공연 기획자로 이름도 올려 보고, 에디터란 타이틀도 달아 보고, 음악 리뷰도 써 보고, 인터뷰도 해 보고 발표도 해 보고…  연주 세션도 계속 하고, 그러다가 일 제의도 받아 보고, 정신차려보니 어느 순간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고! 어느샌가 나도 부정할 수 없는 ‘대구 씬 사람’이 되어있지 뭐람. 그래서 올해 여름, 한 통의 문자를 받았을 때는 아무래도 일종의 감회가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조은별님! 안녕하세요,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드림-]

 

 세상에, 나 보고 예술인이래.

 

공연장 안전교육 듣는 중. 여기도... 일 하려면... 공부해야 하는구나... 

 

 

 아무튼 예술인 증명도 받았고, 요즘은 연주와 스텝으로 돈도 벌어 먹고 살고 있다. 아무리 내가 개인적인 부끄러움에 “에이, 뮤지션이라뇨. 저는 그냥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손사레를 쳐도, 현재 예술활동이 내 직업이고 누군가는 나를 음악인으로 인식한다는 점과 내가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던 시절을 넘어서 어떠한 활동들을 꾸준히 쌓아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보면 역시 나는 덕업일치를 이룬 셈이다. 

 

 

 다들 덕업일치하면 당연히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들 하지만, 글쎄, 당연하게도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과 음악을 일로써 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선의 이야기고,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오히려 내 마음이 내 발목을 잡는 순간들이 빈번하고, 아직 서툴러 실수할 때마다 자괴감의 늪에 빠지고, 욕심에 비해 내가 지닌 재능이 투명하게 밑천을 드러낼 때마다 우울해지고, 예술노동에 대해 만연한 후려치기나 몰이해를 접하면 속상해져 속으로 아주 험한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 -내가 정말로 순수하게 좋아하던 것들이 내 인생을 이렇게 새로운 길로 이끌어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신기하고 신이 난다.

 

 

 예전에는 늘 ‘서울’을 꿈꿨다. 스스로도 서울의 넓음과 인프라를 욕망했지만,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사실들이 내게 늘 종용하기도 했고 말이다. 공부든 음악이든 인서울을 하고 홍대에서 활동하고 메이저한 매체에 나와야 된다고 다들 말했고, 내가 속한 지역의 예술가들을 좋아하게 되고 나 또한 그 안에 속하게 된 지금에도 여전히 세상이 말하고 보여주는 사실은 별로 변하지 않아서 나를 자주 움츠러들고 불안하게 한다.

 

밴드 ‘스카레톤’ <스트릿어택> 동성로 공연 사진 )

 

 그럼에도 이제는 많이 불안해하고 슬퍼하진 않는다. 이 곳에도 분명한, 작더라도 아주 분명하고 빛나는 노력과 결과들이 있음을 알고 꾸준히 빛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잘 알게 되었으니까.아직도 여기서 새롭고 반짝거리는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처음 헤비에서 낯선 이들과 손을 잡던 그 날처럼 설레고 모든 경험이 소중해진다. 앞으로도 이 소중함을 다채롭게 이어가야지!

 

 …..라고 기운찬 20대 청년같이 외치고 끝나면 참 보시기에 좋겠지만, 솔직히 막막하다. 아니 진짜 어떻게 힘이 안 들겠냐고요. 그렇지만 여기서 다시 씁쓸한 이야기를 꺼내기엔 적절하지 않으니 글은 여기서 끝맺을테지만 고민과 불안은 실시간이고, 대면이고, 일상이다. 내가 이 반짝임들을 좋아하는 이상 내 고통은 절대 끝나지 않겠지…...

 

 뭐,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마이너 덕질하는 자의 숙명이라고 해 두자😂 지속가능한 동네 덕질을 위하여,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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