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하드코어 펑크가 공존하는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당신은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 나시고렝? 신혼여행으로 유명한 발리? 스쿠버다이빙? 나는 작년부터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이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메탈리카(Metallica)가 국빈 대접을 받는 나라.”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인도네시아에 관한 한 재밌는 뉴스(링크)를 접한 것이었다.

 

덴마크 총리가 메탈리카에서 활동 중인 자국 출신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에게 메탈리카 싸인 CD를 부탁해,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자 그가 크게 기뻐했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그 뉴스에선 황당한 소식을 하나 전하는데, 인도네시아 법으로 공무원이 공짜로 선물 받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이 선물은 국가 재산으로 넘겨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메탈리카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그것을 다시 개인 자산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 일화를 봐도 알 수 있듯, 현재 인도네시아는 메탈이나 하드코어 펑크 등 소위 빡센 음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종교적 율법을 중시하는 *이슬람 국가라서 엄숙한 이미지가 있을 것 같은데, 빡센 음악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런 현상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금부터 이 글에서 할 얘기는, 이슬람과 하드코어 펑크가 공존하는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관한 것이다.

 

* 인도네시아는 정교 분리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국교가 없다. 하지만 인구의 87%가 무슬림으로서 사실상 이슬람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5천 5백만 명으로 세계 4위 인구이며,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은 나라이다.

 

(좌) “투찬스”의 사장 “진두찬” 씨가 자신의 가게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 “영남일보”에 소개된 투찬스. (출처: 투찬스 SNS)

(좌) “투찬스” 내부. (우) 투찬스에서 “Ini Scene kami juga!”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 (출처: 좌-투찬스 SNS, 우-김도균 작가님)

지난 6월 22일 토요일 저녁 8시, 경상감영공원에 위치한 식당 “투찬스”에서 “Ini Scene kami juga!(여기는 우리의 씬이기도 하다)” 상영회가 열렸다. 단 10명만 초대해 진행하는 소규모 상영회였지만, 소규모이기 때문에 더욱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의미 있는 대화들이 오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시사하듯, 씬은 누군가가 독점할 수 없기에, 서로 다른 특성을 타고난 사람들끼리 씬 내에서 차별 없이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서 배경은 인도네시아인데, 인도네시아 하드코어 펑크 씬을 다루면서도, 인터뷰이를 모두 여성으로 잡았다.

 

이 상영회의 진행을 맡은 “배미나” 씨는 펑크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DBGC)”의 멤버로서 인도네시아에 공연 투어를 했었다. 배미나 씨는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펑크 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관심이 이번 상영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상영 후, 대화모임에서 한 관객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는 중에, 이슬람 국가라서 왠지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특히 영화 속 인터뷰이들이 씬 내 성차별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오히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도 공감할 게 많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이런 결론으로 관객들의 감상이 모아졌다.

 

아무래도 세계 어딜 가나 하드코어 펑크 씬은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여성은 그 씬 내에서 소수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도네시아 하드코어 펑크 씬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영회에 참가한 DBGC의 두 멤버 배미나, “김명진” 씨는 본인들도 펑크 씬 내의 여성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김명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도 공연장 등에서 성적 대상화를 당하는 일이 많으니까, 여성으로서 관객으로 참여해도 그런 일들로 금방 떨어져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결국 세계 어디를 가나 차별이란 존재할 터인데, 차별 당하는 입장에서 그 씬에 남아있기로 결심했다면, 그 씬 내에서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상영회 관객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Ini Scene kami juga!” 공식 예고편

영화 내 인터뷰이들이 얘기했던 것들 중에 성차별 외에도, 씬 내 독선적인 분위기에 대한 것도 있었다. 인터뷰이들 중에는 하드코어 펑크의 음악성도 좋지만, 그 음악 속에 담긴 사상이 좋아서 하드코어 펑크 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이 많았다. 그들이 뽑는 하드코어 펑크 씬의 주된 가치는 무정부주의를 중심으로 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털어놓기를, 막상 하드코어 펑크 씬에 직접 들어가 보니, 자유와 평등은 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씬 내에서 활동 좀 오래했다고 서열을 가리려고 하거나, 옷차림으로 우열을 판단하는 등,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씬 내에서 환멸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관객들도 여기에 공감하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많다고. 펑크 음악이 전해주는 사상과는 달리, 강압적인 분위기가 많아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관객들은 털어놓았다.

 

하지만 영화 내 사람들이 이렇게 씬 내에서 차별을 당하더라도, 계속 씬 내에 꿋꿋이 버티며 자신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찾는, 그들의 이런 모습이 멋지다는 의견도 나왔다. 확실히 이 영화는 차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영화 속 그들은 비록 이런 차별들이 있지만, 씬 안에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일들도 많이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씬 내에서 경험한 멋진 일들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빛이 기쁜 흥분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씬이라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도 생기는 것이고, 그것이 씬을 유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테니 말이다.

 

그들이 뽑는 씬 내에서 겪는 최고의 순간은 역시 공연장에서의 광란이다. 영화 속 그들도 그렇고, 펑크 록을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사람들도 모두 이 광란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그 광란의 분위기 속에선 세상의 모든 괴로운 일들을 다 잊을 수 있고,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것들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펑크 씬이 형성이 될 수 있었고, 많은 고난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꿋꿋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과 인도네시아 투어를 함께 진행했던 현지 밴드 “Saturday Night Karaoke”의 투어를 담은 영상.

인도네시아 펑크 씬에 관련된 영화라서 그런지, DBGC의 두 멤버에게서 인도네시아 공연 투어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영화 내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인도네시아의 관객들은 독보적이라는 말을 했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배미나 씨와 김명진 씨도 그들의 이 발언에 공감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슬람 국가라서 술도 안 마시는데 너무 잘 놀더라.” “어쩌면 술을 안 마셔서 노는 것에 더 열정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이 덧붙여졌다. 인도네시아는 밴드 공연의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공연장들이 모두 우리나라 웬만한 공연장들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그 큰 공연장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광란의 분위기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라고.

 

DBGC의 멤버들은 같이 인도네시아 투어를 진행했던 현지 밴드 “Saturday Night Karaoke(SNK)”에 대한 추억도 몇 가지 늘어놓았는데, 그 중에 SNK 멤버들이 술 많이 먹자고 말해놓고, 술 마시는 곳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는 얘기도 있었다. DBGC에서 미술 및 영상을 담당하고 있는 “팔로” 씨는, 술은 금지하고 담배에는 관대한 인도네시아 문화가 꽤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게 어느 정도나면, 자식들이 부모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울 정도라고 한다. 담배도 독한 담배를 많이 선호해서 타르 함량이 보통 우리나라 담배의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된다고 한다. 배미나 씨가 SNK 멤버에게 “인도네시아에서 인기 끌려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힙합과 메탈이라고 한다. 그 외에 펑크도 꽤 인기가 있는데, 하드코어 펑크나 그라인드코어 등이 인기라고 한다. SNK는 팝 펑크 밴드인데 상대적으로 덜 격렬한 음악을 하다 보니, 여기에서 오는 차별도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Ini Scene kami juga!” 상영회를 진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관객으로 참여한 사진작가 “김도균” 씨는 영화 내에서 뮤지션들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닌, 자기와 같은 사진작가나 기자들의 이야기도 담은 게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확실히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 내에선 인도네시아 하드코어 펑크 씬의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씬 내의 사진과 공연영상들을 많이 틀어주는데,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로 펑크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씬이란 뮤지션들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사진작가, 기자, 관객 등 여러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돌아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영회는 관객 모두에 긍정적이고 깊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통해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씬 내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며, 차별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속 인터뷰이 “Alda(알다)”의 말처럼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토론하는 것”이 차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토론을 통해 차별에 반대하며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토론을 통해 씬 내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 이 상영회가 그런 토론의 자리가 되었던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꼭 보길 바란다. 인도네시아 하드코어 펑크 씬이 궁금한 사람,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 인디밴드 씬에서 활동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보면 특히 많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의미 있는 상영회가 대구 내에서 많이 열리면 좋겠다.

 

 

글 / 정희섭

 

◇

 

영화 시청 한국인 문의

[ imstealaway@naver.com ]

 

“Ini Scene kami juga!” 공식 웹사이트

[ https://iniscenekamijuga.com/ ]

 

https://www.facebook.com/BIG9GOGOCLUB/

빅나인고고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