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오 + 땡여사 『기억을 기억하는 법』

 

"늘 사랑으로 아껴주시고 키워주셨던 우리 할머니에게 작지만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엔 여러가지 좋은 선물들이 많겠지만 진심이 담긴 노래가 어쩌면 제가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노래와 영상에 마음을 담아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합니다." - 라이브 오 -

 

 

Credit
- Composed, Lyrics, Vocal : Live O
- Mixed, mastered : Live O
- Arranged : Live O, Yoo jae hyeong, Jeon hwi young
- Piano : Yoo jae hyeong
- Ajaeng : Jeon hwi young
- Art Directed : madam Thank
- Filmed, Edited : Jang kyubin
- Produced by madam Thank, Jang kyubin
- Translation : Danmy kim
- Filming Location : Young's house
- Special thanks to Grandma Kwon han sun

 

https://youtu.be/3tmoxn4ylgo

 

 

Art Director's Note by 땡여사

 

‘우리 딸에게’는 재원이오빠야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방법인 동시에 일종의 헌사이자 고백이다. 이 곡의 가사는 생전에 할무니께서 당신들 딸에게 했던 대화를 토대로 글밥이 쪄졌고, 거기에 재원이오빠야의 마음과 기술(?)이 더해져 음악이 완성되었다.

디렉팅을 시작하며제일 포커스를 맞춘 것은 그 무엇보다도 오빠야의 진심이다. 이 진심을 어떻게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영상 속 화자로써 재원이오빠야를 전면부에 뒀다. 가사 전개상 엄마가 딸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이건 단순 성별에 중점을 잡을 필요성을 못 느꼈고 굳이 연기자를 고용한다거나 혹은 내(여자)가 대신 한다는 상상을 하지 않은 것은 당사자가 하는 것만큼 진솔하고 아름답지는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어쨌거나 이 선택이 감상 측면에서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내는 언제나 그렇듯 아쉬울지 언정 실존하는 것들을 담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기억을 끌어올리는 매개로 사진첩을 선택했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사진첩이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소중한 것들로 까득 까득 찬, 삶의 다양한 순간순간들 그 사진첩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순간, 고단한 일상 등등 저마다 다양한 순간들로 채워져있겠다 생각한다. 잊고 있다가도 사진을 보면 기억나는 그 때들. 이 아이디어는 우리 할매랑 함께 옛 사진첩을 들여다보다가 할매가 사진을 보면서 이때는 어땠고 저 때는 저랬다카믄서 내게 다정하게 설명해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매를 보믄서 사진의 엄청난 힘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콘티를 짰고, 영상 작업으로 쓸 사진을 고르면서 한 개인의 삶을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디 이 영상을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의 사진첩은 안녕한가 안부도 묻고 먼지도 닦아주시고 들여다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모든 할매가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까이 경험한 우리 할매는 항시 앨범이 반질반질 윤이나게 관리하시고 들여다보시곤 한다. 아무렴 과거는 현재이자 미래라고 감히 엄청나게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이 곡은 할머니 마음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고, 할머니께서 사셨던 시대상과 할머님 삶이 잘 담겨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작업을 시작할 때 부터 감정을 굉장히 과몰입했던 터라 할머니의 삶과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음악 속에서, 앨범을 통해 만난 할무니는 자식이 곧 세상이었다. (그리고 울 할매 또한 그렇기에 할매의 마음 같은 게 있나부다)나는 당신들처럼 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사실 그럴 자신과 의지가 별로 없어서 ‘나는 근데 당신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요 누가 뭐라해도 제가 제일 소중해요’ ,아마 결혼도 안했고 자식이 없어서 조금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어무니 아부지께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엄마들과 아빠들께 꼭 전달하고 싶다. 당신들의 노고가 있기에 나는 당신들과는 다른 온도의 세상을 살고 있다. 나는 그 노고를 기억하고 잊지 않음으로써 감사를 전하지만 자식된 입장으로 앞으로 살아갈 당신들 인생 또한 잊지마시라고, 당신들 인생 위하시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우리 딸에게 / Dear Daughter - 

 

아가야 우리 아가 춘양살던 어렸을적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Oh baby, oh my baby girl
When you lived in Chunyang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오빠 동생 손잡고 꽃밭산골 뛰놀며
엄마엄마 하던 모습이
Held hands with your siblings
Ran through the creeks and daisy fields
called mama, mama

 

발그레레 두볼과 두손
재잘재잘 노래하는 입술
초롱초롱 눈망울까지도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Rosy cheeks
Rosy hands
Twittering lips
Twinkling eyes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아가야 우리 아가 고향떠나 결혼할적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멋진신랑 손잡고 수줍게 눈물 훔치며
엄마엄마 하던 모습이
Oh baby, oh my baby girl
When you left home to marry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Holding hands with handsome
Holding shy tears away
called mama mama

 

아가야 우리아가 시집살이 고달플적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이리저리 치여서 혼자 방에 소리 죽여
엄마엄마 하던 모습이
Oh baby, oh my baby girl,
When living at groom's,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after a long long day
Calling mama mama

 

꼬르르륵 배고픈 핏덩이들
꾸벅꾸벅 밤낮으로 걱정
털석털석 서운한 말에 떨구는 마음까지도
너는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Hungry rumbling stomachs
Drowsy worrisome days
blunt careless words
Hurting your heart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매일매일 남편과 아이들 기도
사시사철 안밖으로 뒷바라지
마디마디 굳은 살 배긴 몸과 세월까지도
너는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Every hour spent supporting
Every day spent praying
Every season spent taking
care for your husband and kids
every year seeped into you as hardened skin
You reminded me of how I was

 

아가야 우리 아가 흰머리 주름살도
내 모습과 참 닮았구나
Oh baby, oh my baby girl
Your white hair and wrinkles
You remind me of how I was

 

이쁜 우리 아가
my beautiful girl

 

 

youtu.be/ZOmDrfOrXYg

 

마음은 참으로 요망하다. 음악이 나오고 영상이 완성되어 바깥 세상에 나오면 이 곡에 대한 마음도 완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욕심이란 놈은 참으로 끝이 없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작업해서 이대로 끝내기에는 내 마음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달랑 한 곡으로 공연을 열기도 애매하고, 눈 씻고 찾아봐도 이렇다 할 홍보 창구는 미지수고, 어떻게든 이 곡과 함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런 저런 고민의 끝에 전시회를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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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는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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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우리 딸에게'라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디렉팅 하며 느꼈던 개인적 사유를 좀 더 공감각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열게 되었다. 작업을 통해 만난 할머님 삶의 순간들은 지금까지의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의 삶들도 들여다보게 하였다. 그들과의 연관성과 유기적인 관계성을 실감하며 때때로 뜨거운 눈물이 나곤 하여 이런 경험을, 이 감정선을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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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아가였던 적이 있으며, 누구나 늙어가고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시간은 그렇게 영원할 것 같으면서도 찰나임을, 그렇기에 소중한 한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깜빡하곤 하여 웃프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 기억의 주체는 스스로임을 상기하며 질 좋은 경험을 경험하고 나누고자 전시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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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락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1길 62-5 1층 더폴락

●전시장소-더폴락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환상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더폴락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왠지 내가 원하는 결의 사랑을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구성하는 제 1요소, 핵심 요소인 폴락이라는 공간의 지기인 성언니와 인혜언니가 주는 따뜻한 공간감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장소로 선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고, 폴락은 역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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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일자

2020년 11월 19일부터 4개의 초가 다 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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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1 사진첩

전시의 메인 오브제인 사진첩에 들어갈 사진에 대하여 한동안 고민했다.

뮤직비디오 영상을 통하여 할머님의 생애의 순간들은 충분히 다뤘다고 생각했고, 할머님을 기억하며 또 다른 기억들을 쌓은 기억을 살려 나머지 빈 장들은 이 작업을 통하여 만난 우리들 자신(재원이 오빠, 규빈이오빠, 나)과 우리가 함께 작업한 순간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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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2 향기

각 잡고 뭔가 일(자체 제작 공연)을 벌일 때엔 그 일에 대한 향기를 만들곤 한다.

이번에도 아로마 테라피스트 깜미와의 협업을 통하여 '우리 딸에게' 만의 향기를 조향했다.

음악을 만든 이가 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재원이오빠와 동행하여 깜미네 공방으로 향했다.

사전에 곡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전달했고, 깜미와는 지난 4년간 작업하며 합을 맞춘 터라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애정과 신뢰를 동반한 깜미이기에 이번에는 어떤 향기를 만나게 해주시려나 고대하며 향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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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긴 호홉으로 깜미와 재원이 오빠야는 음악과 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 결과 4가지 향기가 선택되었다.

첫 번째 페츌리(삶의 조각조각들), 두 번째 로즈우드(수용), 세 번째 샌달우드(자기 숙고, 명상, 내 안의 나의 목소리), 쟈스민( 순간 순간을 즐기는 힘, 지금에 충실한 삶). 이 4가지 향기의 오일과 따뜻한 질감의 밀랍으로 초를 만들어 전시에 쓰일 향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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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3 음악

정갈하게 녹음한 음악이 있었으나 전시 직전에 방향을 틀었다. 이왕 하는 거 이 전시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면 의미롭겠다는 생각에 원테이크(영화에서 쓰이는 촬영기법 중 하나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중간에 끊기지 않고 한 번의 컷으로만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방식으로 인트로 부분에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음악에 대한, 전시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연주를 하여 녹음을 마쳤다. 그렇게 전시만을 위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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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4 행위

예기치 못한 상황과 우연성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리고 음악은 역시 라이브지! 하는 마음에, 그래서 준비했지롱! 형평성과 부실한 나의 체력을 고려하여 하나의 초가 다 탈 무렵, 성언니와 인혜언니와 교신하며 적절한 타이밍을 위해 폴락 담벼락에 붙어서 감상자분께서 충분히 감상을 하고 마칠 무렵 짜잔 하고 나타나서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드리는 행위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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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가이드

1. 감상할 마음의 준비와 육체적 준비(편안한 자세+콧구멍 열기)를 한다.

2. 성냥 또는 라이터를 활용하여 초에 불을 켠다.

3. 헤드셋을 낀다.

4. CD 플레이어에 버튼 중 ▶을 누른다.

5. 다시금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6. 사진첩을 펼친다.

7. 감상을 즐긴다.

8. 여운도 즐긴다.

9. 감상이 끝난 후 CD플레이어의 버튼 중 ■을 2번 누른다.

10. 원래 자리에 물건을 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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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기

전시를 준비하며 과거의 재료를 채집하고, 과거를 들여다보는 과정과 사유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갈 나를 위한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던 이 전시는 직전까지도 과거에 대하여 스스로 정의 내리기 어려웠고, '도대체 과거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강렬한 의문과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인하여 이 전시를 진행해도 되는가 하는 불안함으로 이어졌는데, 성언니의 "일단 해보고 생각합시다"라는 격려에 '모르는 건 일단 해보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는 생각으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단 해보는 것, 이 말의 파급력과 격려는 쫄보인 내게 참으로 크게 와닿았다. (고마워요 성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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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동안 다정한 재원이오빠, 성언니, 인혜언니와 함께 하여 씩씩하게 전시에 임할 수 있었고, 전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일부는 방명록의 글로써, 일부는 라이브 공연을 통해 만났는데 이 두 종류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생기는 온기의 따뜻함과 그 온기의 전염성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참으로 따뜻한 4일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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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하나씩 초가 다 탔고, 그다음 초로 갈기 전 의식처럼 그날그날 써진 방명록을 읽었다. 정성스럽게 감상에 대해 수놓은 글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예기치 못했던 변수였고.,참으로 아름다운 첫 번째 변수였다. 두 번째 변수는 우리가 만든 창작물을 몰입해서 감상하고 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경험이었는데 이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듯하다. 깜짝 공연 준비하며 타이밍 맞춘다고 담벼락에서 붙어서 때를 기다리며 몰래몰래 쳐다보는데 몰입해서 감상하는 감상자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 달려가서 뽀뽀하고 싶은 마음 참는다고 힘들었다 정말.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굉장히 굉장하게 인상이 깊게 남을 행복한 장면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짜잔'하고 나타나서 놀래킬 때 깜짝 놀라시던 그 반응은 또 어찌나 반갑고 즐겁던지. 여러모로 특별한 감상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전시였고, 그런 감상자분들의 다양한 반응을 느끼며 오랜만에 음악 할 맛을 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름 초연한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내심 감상자들을 많이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음을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속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가시 나무라는 노래를 만든 조성모 오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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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기한 것과 예기치 못한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꿈만 같던 4일간의 전시가 끝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좋든 싫든 간에 모든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순식간에 과거가 된다. 과거들은 저마다 유통기한이 다르고, 어떤 과거는 소실되기도, 영원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유통기한이 긴 과거를 사는 동안 많이 마주하며 살고 싶다. 추억팔이를 있는 힘껏 하곤 하는 나를 위해 앞으로도 부지런히 좋은 질의 기억의 씨앗을 심어야겠다는 다짐과 혼자였으면 결국 포기했을 이 전시를 여럿의 마음이 보태져 성황리에 끝이 났고, 함께 해준 이들의 애정 어린 이 공심의 마음과 온기 가득한 감상자들의 글과 반응들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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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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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여담

타고나길 청설모와 까치의 기질이 있습니다. 일단 상상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상상하는 거의 대다수가 음악적인 상상이곤 하는데 가령 예를 들자면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요렇게 죠렇케 버무려서 공연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여하튼 이런저런 상상들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채집하여 제 마음에 심어놓습니다. 이 도토리 같은 마음을 여느 청설모들처럼 심어놓고 깜빡하기도, 배고프면(?) 찾아내어 이따금 발현하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공연 레퍼토리보다는 참신함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이유인즉슨,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행위예술에 관심을 가지며 연주라는 행위 이상의 행위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이글이글 끓더라고요. 이 욕망을 토대로 프로젝트들을 구상하며 삐걱삐걱하는 짱구와 마음에 기름칠 오지게 한 결과, 창작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다양한 파문을 일으키는 인상 깊은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LiveO의 〈우리 딸에게〉란 곡을 듣고, 소위 말하는 그분(=예술의 신)이 찾아오셨지요. 그분이 좀 길게 오셔서 재원 씨와 함께 여러 가지 작업을 했고, 재원 씨와 함께 유종의 미를 거뒀던, 여러모로 재원 씨와 찐하게 호흡한 한 해였네요. 재원 씨의 곡들(우리 딸에게, Ennio Morricone-Nella Fantasia, merry O-mas)을 토대로 미팅을 빙자한 수다, MV 디렉팅, 연주, 추모, 아트 디렉팅, 전시, 공간 연출 등 별의별 경험할 수 있었는데, 혼자였으면 상상만 하다가 말았을 것을 재원 씨의 다정한 격려와 응원, 수용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음악을 만들어 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재원 씨 덕분에 2020년은 수확의 기쁨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우리 딸에게〉라는 곡 작업을 하며 느꼈던 감상적인 측면을 전시 형태로 확장한 ‘기억을 기억하는 기억법’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며 오랜 염원이었던 ‘작가님 되기’를 이룰 수 있었는데요. 전시가 또 요망한 게 확실히 공연과는 성격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면, 공연은 특정 시간에 일어나는 행위이자 행위자를 필요로 한다면 전시는 행위자를 대변하는 매개체가 있다는 것, 시간과 공간이 좀 더 자유롭다는 것이 크게 느꼈던 차이점이었습니다. 전시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한정되어 있고, 변수도 다양하게 펼쳐져서 전시가 개최된 4일간의 시간은 꿈만 같았고, 감상자들의 반응을 마주하며 감정의 모공이 완전하게 열려서는 4일 내내 헬렐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뿌듯했고, 오랜만에 만난 감상자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상상 이상으로 진심은 강하고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여러모로 기획할 맛, 음악 할 맛이 무럭무럭 샘솟았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적인 여담

2020년 여름, 오랜 시간 동안 염원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저의 꿈이 거칠게 말해, 개-박살이 났고, 그렇게 저는 조졌습니다. 완벽하게 조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파혼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되려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고맙게 생각하며, 이 결과를 후회하지 않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유감스럽지만 ‘그럼에도 참 멋진 경험을 했다’라는 생각을 하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글 속에 개인사를 언급하는 것에 대하여 저로서도 살짝 불편하고 보시는 당신 또한 불편(혹은 당혹)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건 없이는 2020년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의 사적인 여담을 쓰기 어려웠고, 진솔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 딸에게〉 곡 작업이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중에 작업이 들어갔는데 그래서인지 가이드 듣자마자 과몰입해서는 그분(=예술의 신)이 강렬하게 오셨습니다. 초반에는 녹음만 진행하려 했다가 가이드 음악을 들으며 눈물 콧물 쏟아내면서, 제 마음속에 심어놨던 도토리 하나가 새싹을 틔웠죠. 그날로 바로 재원씨께 “오빠야, 이건 음악으로만 남기기 아깝다. 이거 영상도 작업하자. 내가 각 한 번 잡아볼게. 그래서 규빈이 오빠야는 바쁘나?” 얘기했습니다. 그리하여 금손 비쥬얼 디렉터 장규빈씨가 합류했고, 본격적으로 기획, 연출, 녹음, 반복되는 미팅, 촬영 속에서 권한순 할머님―조재원 씨의 친할머니, 〈우리 딸에게〉는 할머니를 기리며, 할머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게 주 내용―을 기억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재원 씨의 마음이 까득까득 담긴 멋진 작업물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사진첩을 통해 만난 할머님의 삶의 단면들은 저 자신의 사진첩도 꺼내 보게끔 하는 감각적인 경험으로 이어졌고, 이 경험을 토대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는 막연한 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딸에게〉 MV가 공개된 후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인 제게 유튜브라는 창구는 굉장히 어색한 동시에 아쉬웠고, ‘그래도 마 라이브 연주 빠지면 섭섭하지!’, ‘어떻게 하면 음악도 들려주면서 이 곡을 작업하면서 내가 느낀 것을 타인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잘 돌아가지 않는 짱구를 요리조리 굴려 가며 전시 기획을 촘촘하게 잡아갔습니다. 내심 전시 준비하며 ‘과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정의 내리기 힘들었던 터라 전시 의도에서 말문이 막혀선 준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총체적 난국의 상태인 저를 재원 씨가 인류애를 발휘하여 무한한 격려로 지지해주었고, 거기에 더폴락의 지기인 성 언니가 ‘일단 해보고 생각합시다’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덕분에 없던 용기도 즙을 짜내어 결국에는 전시회를 기대 이상의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딸에게〉라는 곡을 소재로 전시까지 하고 나니, 마침내 이 곡에 대한 마음이 완결이 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열렬히 작업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프로젝트와 이별하는데 마음의 품과 받아들이는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이라 요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전시 끝나자 마자 짐 바리바리 싸서 친구네 집에 한 달 가량 머무르며 요양을 하고 있었고 그 즈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늘 진심인 저는 다시금 재원씨께 유종의 미를 빙자한 작업을 또 한 번 제안했습니다. PJmorton의 〈Peyton's Lullaby〉를 커버할 요량으로 편곡 스케치를 하던 중 지나가는 말로 “근데 오빠야, 시간이 좀 넉넉했으면 오빠야가 캐롤 느낌의 자작곡 만들면 진짜 좋았을 텐데 시간이 촉박해서 넘 아쉽다”라는 제 말 한 마디에 우리들의 조재원 씨는 이틀 뒤 “휘영아 한 번 들어봐~” 하며 저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캐롤을 만들어 가이드를 보내왔습니다. 그즈음 한 해를 갈무리하며 혼자 청승이란 청승은 다 떨고 있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보내준 가이드 음원을 듣고서는 폭풍 오열하며, 당장 전화해서는 “조재원 천재다, 조재원 미쳤다 조재원 짱이다 조재원은 최고다! 진짜 아름다운 곡이다”는 찬사를 연거푸 외친 후 그 길로 바로 짐 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9일부터 작업에 들어갔던 터라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 속 작업은 초고속으로 진행(3일에 걸쳐 연습과 녹음을 병행하며 진행했고, 크리스마스 요정이 장래희망 중 하나인 제게 크리스마스 공간 연출은 어렵지 아니하였지만, 자연광을 활용하여 영상을 촬영했던 터라 10분 만에 촬영을 마쳤습니다)되었습니다. 채집한 재료들은 재원 씨의 믹싱, 마스터링, 영상 편집을 통해 기깔나게 손질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MERRY O-MAS〉가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뭐다? 선물이죠~!!! 작업 초입 때부터 곡 완성되면 올해 굉장한 도움을 주신 폴락 언니야들한테 깜짝으로 라이브 연주를 선물로 드리자고 계획했던 터라 신나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더폴락으로 향했습니다. 신나는 마음과는 달리 추운 날씨로 인하여 손은 얼었고 내 마음 같지 않은 몸은 실수를 연발하여 개인적으로는 수치심이 드는 연주였음에도 선물을 받는 성 언니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좀 실수하고 연주가 좀 구리면 좀 어때? 언니야가 좋아하잖아. 그것만으로도 선물하는 기쁨은 충분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은 받는 것도 좋지만, 주는 기쁨은 더없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는 거겠지요? 이 곡 덕분에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저의 2020년은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감상자들과 재원 씨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담의 여담

첫 번째 여담의 여담. 사이좋게 지내는 베이스 연주자 하병구 씨 덕분에 조재원 씨, 장규빈 씨를 알게 되어 이따금 이렇게 넷이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합니다. 다들 자신의 라운드에서 열심히 음악을 하는 분들이라 술자리에는 언제나 음악 얘기가 활기차게 흘러넘치곤 하는데 술 좀 들어가면 또 어찌나 사는 얘기를 재미나게 하는지 참으로 만나면 좋은 친구들입니다. 아주 그냥 시트콤 같은 친구들입니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라운드에서 음악 하는 것을 관조적으로 보기만 하다가 함께 작업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때때로 상상 이상인 것 같습니다. 이미 서로에 대해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는 만큼 작업하면서도 솔직하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아이디어가 점차적으로 빌드업 되어 작업물이 나오는 것을 보며 세 명의 마음과 머리를 모으니 ‘못할 것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한 번은 영상 편집 미팅하며 규빈 씨께 넋두리처럼 “오빠야, 나는 왜 아무도 안 알아주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근데 이게 또 왜 이렇게 재밌누. 근데 아무도 몰라주니까 좀 속상하기는 하다” 하니 규빈 씨가 “아니다, 휘영아. 나는 안다. 네가 얼마만큼 열심히 무엇을 했는지 나는 안다. 보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보이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고, 사실 개인적인 상황도 상황이겠지만 이 직업군 자체가 참 고독한 것 같습니다. 15년을 아쟁과 함께하며 고독했음에도 여전히 이 고독함이 익숙하지가 않은 제게 “나는 안다.”라는 말은 엄청난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거기에 재원 씨의 “우리 휘영이, 잘한다.”, “휘영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봐.”라는 무한에 가까운 지지는 소극적인 쫄보인 제게 참 많은 힘을 불어넣어줘서 적극적인 쫄보가 될 수 있었고, 덕분에 제 기량 이상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담의 여담의 여담

2021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친구와 동산에 올라 백만 년 만에 해님 뜨는 것을 보며 조촐하게 새해 다짐도 하고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원고라는 것도 써보고요. 차근차근 솔리스트로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개인적인 작업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과 이번에야말로 각 잡고 사람의 도리(≒돈 벌기)를 해보고자 마음도 먹어가며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날, 나쁜 날, 기쁜 날, 슬픈 날, 요망한 날, 화나는 날, 별의별 날들의 연속이겠거니 합니다. 그 별의별 날들은 결국은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수없이 많은 장면 중 하나겠지요.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꼭 전달하고 싶습니다. 부디 일상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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