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돈] 어느 록키드의 선택

 

1999년 12월 겨울, 클럽 헤비에서 ‘$1(원달러)’라는 밴드로 처음 공연을 했다. ‘$1’은 3인조였고 ‘스케이트 코어’라는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였다. 나는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였고 베이스와 보컬 그리고 드럼과 보컬의 파트로 이루어진 3인조 밴드로, 80년생 스무 살 동갑내기의 밴드였다. $1는 7곡의 2곡의 (Hi-Standard, MxPx) 카피 곡을 제외하면 5곡이 자작곡이었다.

 

당시 크게는 크라잉 넛, 노브레인, 18크럭, 레이지본등 “드럭"에 의해 촉발된 ‘조선펑크’가 수년째 인디씬의 흐름이었으며, ‘닥터코어911’, ‘피아’등이 중심이 된 속칭 하드코어라 불리는 ‘하이브리드메틀/뉴메틀’ 음악이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몇 년 사이엔 펑크 밴드들을 중심으로 인디 밴드의 음반이 본격적으로 발표되던 시기였고, 인디씬이라는 개념이 점점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일 들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물론 이 모든 움직임은 우리가 살고 활동하고 있었던 대구와는 거리가 있는 서울의 이야기 이었으며, 하이텔/나우누리/천리안 등의 PC통신으로 이러한 정보가 공유되었다.  컴퓨터로 음악을 녹음 할 수 있는 장비가 대중화되기 몇 년 전이다.

 

‘$1’의 연습실은 남부 정류장 맞은편 어느 채소가게 지하에 있었다. ‘Boys on the docks’, ‘Red spunk’,‘화염병’, ‘$1’, ‘PPR’이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80년생이었지만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었으며 81년생과 당시 고교생 멤버들도 많이 있었다. 같이 연습실을 사용하는 동료들, 우리는  며칠 만에 마치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이 끈끈해졌다. 우리는 그 곳에서 밤새 주량도 모른 채 양파링에 소주를 마셨고 그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그 곳에 가면 모두 만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모두 '하드코어/펑크 키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안으로는 매우 끈끈하고 우애 있었으며, 밖으로는 매우 날카롭고 까칠한 태도를 취했다.
 

‘남부정류장연습실’의 합주 환경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열악함 그 자체였다. 제대로 된 장비는 없었다. 기타 앰프만이 겨우 따로 있었으며 베이스, 마이크는 국산 다트 10채널 믹서로 들어갔다. 겨우 소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구의 펑크로커들이 그 곳에 하나 둘 모였던 것은, 다른 연습실의 형님(선배님)등이 불편했고, 그들의 음악이 내심 못마땅했으며,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과 태도가 신선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 우리들에게 ‘선배’들은 고루한 과거였고, 경계해야할 미래였다.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조언과 "음악 알고 하는 거냐! / 기타 똑바로 안치냐!"식의 권위주의적인 부산물들과는 선을 그었고, 구시대의 대구 인디씬의 인맥은 필요치 않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클럽 헤비에서 한 두 번의 공연을 통해 만나게 된 ‘펑크 동지’들은 쉽게 마음을 열었고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우리 대부분은 헤비에서 노브레인, 크라잉 넛 공연의 관객으로 서로의 얼굴을 익힌 사이 들이었다. 우리는 수도권 및 부산 청주의 펑크 하드코어씬과 직접 연계가 어느 정도 되어있었고, 몇 년 후의 이야기이지만 지역의 펑크하드코어 레이블인 'Omado Records'으로 발전하여 대구 경북 지역의 펑크 하드코어 레이블로 음반도 발표하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경기 수도권의 친구들과 교류하면 구축하기도 하였다.

완벽한 낙원이었고, 고민이 없었으며, 매일이 신선한 자극이었으며 흥미로웠다. 삐딱한 스무 살 낭만의 이데아로 가득했던 그 곳에서 고집과 비타협적인 태도 등을 갈고 닦으며, 가능한 한 많은 기존의 것들을 비난하고 자부심과 자만을 섞어 마시고 노래했다. 
 
이듬해 나는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2년 2개월 복무 후 재대하였다. 나를 기다린 베이스 주자와 $1의 맴버는 아니었지만-$1의 오리지널 드러머는 내가 입대한 후 대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재즈아카데미에 입학해 현재 홍대 어딘가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재대 하면 꼭 같이하자고 결의를 한 동갑내기 드러머가 나와 함께 밴드를 만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고 ‘제대로 한 번 해보자!’라는 포부로 2002년 ‘클린 업 트리오’라는 ‘스케잇코어 ’밴드를 시작하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드러머가 연습실을 만들고 운영하였으며, 고급 개인 악기를 아르바이트를 통해 각자 구비하였고, 충분한 연습을 하였으며 , 세련된 곡 쓰기에 매진하였다. ‘클럽 헤비’를 시작으로 이리 저리 공연을 부지런히 했었고, 몇 번의 서울 행사들과 공연들도 있었던 것 같다. 대구 인디신의 중신은 여전히 아니었지만, 더 이상 변방의 아웃사이더는 아니었고, ‘동네에서 제법 잘한다!’ 소리는 듣게 되었다. 그즈음 클럽 헤비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아늑한 곳이 되어있었다. 헤비에서 자주 마주치며 공연하는 밴드 중 서로를 ‘인정하는’ 동료들과는 친분과 유대를 쌓아가며-후일 나는 그 중 하나였던 ‘마치킹스’의 베이시스트로 영입되었다- 몇 년 동안 밴드를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야심찼던 클린 업 트리오는 2006년을 맞이하지 못하고, 데모 한 장 없이 해체되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음악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낙원’은 재현되지 않았다. 음악적 견해차이,  동갑내기 친구들이 만들 정삼각형 편대의 편성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밴드를 둘러싼 갈등, 매일 부대끼며 발생하는 인간적인 서운함 등의 이유로 밴드는 해체되고 말았다. 돌아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까운 이유는 미래의 대한 부담감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스케이트 코어 펑크 유쾌하고 밝은 음악과 맞지 않는 현실과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고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다. 작곡 메이트였던 멤버는 더 이상 펑크음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펑크록이 아닌 우울한 노래들을 밴드 합주 때 꺼냈다. 나는 모든 음악이 비슷하게 들리는 서브장르의 싫증을 느꼈고, 음악이 재미없는 운동 같이 느껴졌다. 그것이 못마땅한 다른 멤버와 마찰이 있었고, 점점 서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어가고, 개인적인 갈등이 쌓이고 그렇게 이것저것을 이유로 서로 번갈아가며 셋이 다투다가 밴드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스물여섯의 펑크 로커들은 그들의 음악처럼 더 이상 밝을 수 없었다. 각자 불안했고 걱정했다. 

2005년, 스물여섯 나에게 밴드는 여전히 즐거웠지만 더 이상 미래를 바라보는 활동이 아닌 오랜 습관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좀 더 표현하자면 이대로는 정말 길거리의 노숙자가 될 것 같았다. 남들처럼 안정된 직장에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고 싶었다.  그 즈음을 돌이켜보면, 내 목표는 평범하고 '안전한 삶'이 되어있었다. 음악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은 강박적인 불안함이 밀려왔다. 모두 유복한 집안의 자제들이 아니었고, 취업과 미래를 생각해야만 할 나이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클린 업 트리오’와 펑크 록 낙원은 그렇게 저물었다.

밴드가 해체된 후, 나는 음악과 현실적 삶을 절반씩 섞어서 살아왔다. 학교생활에 충실하였고 학점관리 및 각종 스펙 획득에 만전을 기울였다. 음악 한다고 날린 학점들을 계절학기로 벌충하였고, 동생이 정착해 있는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준비했다. 토플시험 점수 및 각종 컴퓨터 자격증을 습득하였으며, 취업 동향 및 공무원 시험 준비도 했었다. 이와 별개로 멤버였던 친구가 기어이 우울한 포크뮤지션이 되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도 따라서 통기타를 들고 ‘도노반과 제3행성’이라는 이름으로 포크 음악을 시작하였다. 음악 활동은  나에게 여전히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곡을 쓰는 일, 공연을 하는 일은 여전히 나를 특별하게 하였고,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유일 한 친구들이었다. 녀석들과 같이 공연하는 것, 이야기 하는 것 , 한 잔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음악과 현실적 삶을 동시에 해나가려 했다. 음악을 하되 삶을 완전히 지배하지 않도록 주의했고 경계했다. 

클린업 트리오 이후 지금까지의 삶은 대동소이했다. 1년간 미국에 어학연수를 했고, 27살 여름에 조용히 졸업을 한  후 취업을 했다. 직장에서 캐나다 밴쿠버라는 곳으로 발령을 받아 2년 가까이 그 곳에서 일도 했다. 그러면서 이민을 목적으로 일과 별개로 개인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결국 사업이 망해 빈손으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영어강사, 기타강사, 학원 원장으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안전한 삶’ 을 위해 돈을 벌어가며 결혼도 하고 용석이도 생기고 키워가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한  대구를 떠나 있던 4-5년을 제외하면 어떤 식으로든 클럽 헤비에 한 달에 한 번은 공연하러 가고 있다. 그것이 ‘도노반과 제3행성’ 이었고, ‘마치킹스’였으며  현재는 ‘극렬’이고 ‘신도시’이다. 한 달에 한 번은 클럽 헤비에 공연하러 가고 있다. 
 

2020년, 마흔 하나의 나이에 ‘신도시’와 ‘극렬’이라는 펑크밴드를 병행하며,  처자식을 받쳐들고 나는 아직 어딘지도 모르는 ‘안전한 삶’을 항해  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솔직히 가면 갈수록 조금은 무뎌지고 쉬워지는 것 같다. 삶은 시시때때로 불안하지만, 더 이상 음악으로 인한 불안은 찾아오지 않는다. 현재 내가 가진 음악적 목표는 안일하고, 부지런만 하다면 안전하게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애써 음악 앞에서 치열함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이 없다. 이만하면 괜찮은 취미를 가진 중년이며 비교적 '안전’한 삶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같이 공연하는 훌륭한 후배들을 보면 항상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난 스스로 ‘뮤지션’이라 칭해 본 적이 없다.

‘뮤지션’은 중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원하던 나의 미래였다. 중 2때부터 나의 학교 상담 카드에 나의 장래 희망은 ‘뮤지션’이였다.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중고교시절, 음악은 나에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나만의 어떤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대다수의 팝과 록과 메틀 그의 하위 장르, 역사 등을 공부하듯 음반 / 책자 구입하였고, 아껴 넘기며 암기하듯이 즐겼다, 모르면 알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 시절 나에게 음악은 몰라서도, 이해를 못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고교시절에는 밴드 부를 창설하고 리더역할을 자처했으며, 교내 밴드부가 발행하는 무가지를 제작, 발행하였다. 경북고와 정화여고가 음악 동아리를 연합하여 ‘시나위’공연 단체관람을 추진하였고, 뒷풀이로 마련된 어느 구석진 학사주점 가운데서 붉어진 얼굴로 드디어, 뮤지션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그렇지만 스물여섯 이후 난 단 한 번도 내 스스로를 온전히 '뮤지션'이라 칭해본 적이 없다. 나는 1999년 이후 21년간 클럽헤비에서 공연한 지겨운 얼굴의 베테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뮤지션'이라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었다. 

‘도노반과 제 3행성’ 활동을 한참 활발히 하던 시절, 전업 뮤지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었다. 기타 강사로 학원 학교 나가고 지역 내에서 행사도 많았기에 "이 정도라면 뮤지션도 괜찮은 직업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곡 쓰고 만족하는 시기였다. 그 시기 수도권 레이블에서 앨범 발매 및 소속아티스트로의 제안이 두어 번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해서 서울 부름 받고 올라가는 것이 지역 뮤지션으로서는 큰 영예이자 영광이었기에 고쳐 생각에 생각을 했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컷다. 서울로 올라가는 그림을 진지하게 그리는 순간, 불안 및 강박이 나를 다시 사로잡고 말았다.  서울에서 일어날 일들이 두려웠다. 서른 두 살의 나이로-지금 생각하면 젊디 젊지 않은가- 다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차 기름 값이나 감당할까?, 월세나 낼까? 음악이 될 지 보장도 없고, ‘나이도 서른 셋이나! 먹고 부모님도 나이가 이제 드시는데….’여러 가지 논리적인 변명이 견고하게 장막을 치기 시작했고, 나는 한 번 힘들게 반려하였고 그 뒤로는 쉽게 반려하였다. 그리고는 망할 '지역뮤지션'이 되어 남았다. 

지역뮤지션으로서 자기 일 하며 남는 시간에 음악 하는 것 것은,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REM , U2 등의 가사를 번역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접어 교복 안주머니에 넣던  그때의 내 미래가 아니다. 아무리 그것이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고 허황된 미래라 할지라도, 난 너무 쉽게 포기했고 '안전한 삶'을 꿈으로 쉽게 전향해버렸다. 서울 가서 가서 어쩌면 잘 될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린 아쉬움이 아닐 것이다. 만약에 내가 서울에서 실패를 하고 대구 내려온들 잃을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더 못난 자식 취급을 했을까? 서울에서 실패해 내가 굶어 죽는 일이 발생 했을까? 나는 과연 노숙자가 되어 있었을까?  자칭 펑크 로커인 나는 왜 한 번 내 질러보지 못했는가!

 

너무나도 일찍 겁을 먹고  얼기설기 급한 대로 안전한 길로만 걸어 온 나는 지금 ‘실용음악학원 원장’이 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 ‘록스타’ 된다고 장담하며 낄낄거리던 나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호방하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한 걸음 진흙길이 두려워 밟아보지 못했다. 100%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내딛어 볼 용기가 없었다.   
 
이것은 지역의 음악씬이 좁아서도 아니고, 한국의 밴드 음악의 저변이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냥 나는 록스타/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를 꿈꿨기 때문이다. 중고교시절의 꿈은 뮤지션이었으나 정작 뮤지션의 꿈은 평범하고 ‘안전한 삶’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음악을 하며 내지른 시간과 그때의 순수한 에너지들이 지금 내 밥그릇을 챙겨주고 있다. 또한 밥 굶을까 걱정하며 꾹참고 체득한 사회생활의 경험과 눈치들이 학원을 융통성 있게 경영하게 하고있다. 결국 나는 내가 걸어온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즈음의 방법으로 ‘실용음악학원원장’ 원장이 되었다. 밴드도 적당히 하고 우리 가족 굶기지는 않으며, 가족 친지 경조사 챙겨가며 체면은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 여겼던 순간, 의미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과거의 1분 1초들이 모두 모여 오늘이 되고 있다. 새삼 감탄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가족이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수 있다. 음악하는 행위 보다 쉬웠다. 쓸어 담듯 모아둔 스펙이라는 것도 어디 써먹을 곳이 없었다. 심지어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도 살아갈 길을 많다. 내가 쌓은 스펙은 지금 어디에 쓰여지는가? 다만 근면 성실하고 진심을 다해야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때가 되고 어쩔수 없으면 고루한 풍의 단어인 ‘근면 성실’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라.  

그 시절 나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아쉽지 않은가! 좀 더 용기를 내서 이거다 싶었을 때 내질러 본들 그렇게 큰 비극이 날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렇다고 지금 내가 그렇게 ‘번듯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코로나 앞을 풍전등화와 같은 ‘서비스 업종’의 자영업자다. 

 

1999년의 '남부연습실' 친구들과는 몇 년 전부터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다. 30대 이후에 그들과의 대화에서 절반은 즐거운 옛 이야기였고 절반은 한 숨섞인 정치, 자동차, 직장이야기, 재테크의 주제였던 것 같다. 그것이 솔직한 대화였지만, 불편하였고 그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서글펏다. 그 밤에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정치나 재테크가 아닌 여전히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뉴욕 하드코어, 섹스 피스톨스, 클래쉬, 매닉스, 스톤로지즈, 조이디비전, 배드릴리전, Nofx, 라몬즈, 지미 핸드릭스, 위저 등과 우리가 밤 새 나누었던 영화들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럴지 모르지만 아무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  

도노반과 제3행성 <추석> live 2011-11-11 @클럽헤비

그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상상만으로 마음은 한 없이 무르게 젖어든다. 글을 마치며 지난 친구들이 보고 싶다. 1999년의 친구들, ‘도노반과 제3 행성’을 도와준 친구들, 통기타를 들고 다닐때 같이 공연하던 친구들, ‘마치킹스’, 죽고 없는 친구들, ‘극렬’ 형제들, ‘신도시’동생들…모두 보고 싶은 밤이다. 

용석이가 걷어찬 이불 매무새를 정리하며 그 녀석들이랑 합주 한 판 때리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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