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육하원칙으로 소고하는 홍대 전성시대

201115 (가제) 육하원칙으로 소고하는 홍대 전성시대.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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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일대 파노라마 촬영 사진 © 서울역사아카이브

육하원칙으로 소고하는 홍대 전성시대

많이들 이야기하고, 실제로 일견 인정한다. ‘홍대’ 신(scene)으로 대변되는 인디음악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고. 혹은 그곳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코로나19의 유행과 여파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는 10년 전에도, 15년 전에도 반복됐던 얘기다. 그리고 이는 바꿔 말해 여전히 홍대 신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유의미하다는 뜻이기도, 홍대 신이 그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세기 이후 대중음악 분야 소리와 지역의 브랜딩 연계는 도시의 음악 무대를 구성하는 지역 밴드들, 클럽 등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음악 장르나 소리 그 자체를 가리켜 왔다. 가령 미국 시카고의 블루스,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시애틀의 그런지, 오스틴의 거리 라이브 음악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2000년대 전후의 홍대 인디음악이나 일본의 시부야케이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장르나 양식 넘어 인디음악과 독립예술 생산부터 소비까지 시스템 전반에 관한 것이었으며, 음악만이 아닌 당대 제반 문화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와 그것의 전성기를 반추함이 그저 흔한 추억 따먹기가 아닌 까닭이다.

 

WHERE 홍대가 도대체 ‘어디’?

간단한 물음부터 접근하자. ‘홍대’는 어딘가? 오늘날 ‘홍대’라는 통칭이 오히려 더 익숙한 이 지역은 당연히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홍익대학교 주변 동교동과 서교동, 서강동 일대를 일컫는다. 그중에서도 최초 ‘홍대 앞’이라고 불린 공간은 그야말로 홍익대학교 앞쪽에 펼쳐진 서교동 일대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홍익대학교 정문 주변과 ‘피카소 거리’에 한정해 부르던 좁은 지명이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홍대 인디 신의 탄생 및 부흥 이후로 용어의 의미가 확장되어, 현재는 서교동과 동교동, 서강동과 상수동은 물론 합정동, 연남동 일대까지 영역을 넓혔다.

서교동 일대(1972) © 서울역사아카이브

WHY 홍대가 잘 나간 건 ‘왜’?

그렇다면 이곳은 도대체 왜 특별한 공간이 되었을까? 너무 당연하게, 한편으로는 뜻밖에 여기에는 ‘홍익대학교’라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정확하게는 홍익대학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예술대학이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1946년 설립한 홍문대학관 및 홍익대학관으로 출발한 홍익대학교(당시 홍익대학)는 1954년에 문학부, 미술학부, 법정학부, 이학부의 4학부 11과 체제를 갖췄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미술학부 4개 과만 남은 채 전부 폐과를 겪는다. 교명도 한때 홍익미술대학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과와 다양한 학부를 재신설하고 개편해 본격적인 종합대학으로 발전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입학 정원이 증가하면서도 특성을 살린 미대 진학생이 특별히 급증해 홍대 일대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시기 일반고에는 미술 실기 수업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미대 진학생들은 사설 학원에서 실기를 배울 수밖에 없었으며, 학원 역시 미술대학을 대표하는 홍익대학교 부근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학원 외에도 공방, 갤러리 등이 들어서며 이 일대는 명확히 차별화된 문화예술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홍대앞 미술학원 거리(2017) © 서울역사아카이브

차우진(2014)은 홍대가 다른 곳보다 지리적으로 넓고 평평하다는 점도 주목했다. 현재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교통 요지가 동서남북 너른 공간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동편에는 공항철도 역이 있는 동교동 로터리, 서편에는 지하철 2, 6호선 환승역과 메세나폴리스가 있는 합정역, 북쪽에는 내부순환도로가 지나는 연남동, 남쪽에는 강변북로가 지나는 상수역까지 현재 이곳들은 모두 같은 홍대 앞이라고 여겨지는 곳이다. 게다가 지리적 특성에 더해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 이후 생긴 주택가는 홍대 인근을 주거지로 삼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했고, 이는 연이어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탄생 및 활성화를 촉발했다. 1990년대 IMF 이전의 경제적 풍요를 등에 업은 해외 유학생 및 문화 소비에 대한 관심 급증은 이전까지 이 지역에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끌어들였다.

 

 

WHEN 홍대의 전성기는 ‘언제’?

국내 언더그라운드 신이나 인디음악 신의 태동 및 성장은 분명 동시다발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홍대의 장소성과 존재감은 어디에도 없고, 이전에도 없던 것이었다. 20년 넘어 30년을 바라보는 역사 어떤 시기를 회고한들 홍대는 홍대다. 하지만 전술했듯 홍대의 역사는 부침의 역사이자 쇠락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찬란하게 빛났던 시기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홍대의 전성시대는 최초의 신을 경험한 시기에 따라 각자 다른 시점을 바라볼 수도, 누구나 다 예상할 법한 시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여기서는 크게 각기 다른 관점에 따라 이를 두 시기로 본다. 제1기는 흔히 인디문화의 ‘폭발’로 표현하는 1996년부터 그 이후 주말만 되면 라이브클럽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관객이 들어찼던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제2기는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홈 레코딩 제작 시스템을 통해 인디 음반이 양적, 질적 성장을 보이고, 뮤지션들 역시 ‘홍대’라는 장소성을 벗어나 대형 페스티벌과 지상파 방송 등 주류 취향의 틈을 파고든 2000년대 후반 시기다.

 

홍대 인디신의 태동과 붐을 본격적으로 다룬 기사, 1997년 8월 22일 '경향신문' 26면,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OW 홍대의 전성기는 ‘어떻게’?

제1기(1996~2000년)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홍대 앞 다방이나 술집은 대학로와 신촌 같은 다른 대학가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본격화된 홍대 인근 지역의 상업적 팽창은 홍익대학교 출신에 의한 독특한 분위기와 인테리어의 카페나 문화시설 등장을 부추겼다. 무엇보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을 혜택을 받고 자란 1990년대 초의 젊은 세대는 윗세대와 비교해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지, 무엇을 소비하는지 민감했다. 이들은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해외 생활과 문화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었고, ‘신세대’ 혹은 ‘오렌지족’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소비성 짙은 새로운 문화를 직접 이끌던 이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홍익대학교 정문~극동방송국~주차장 거리’로 이어지는 지역이 마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의식한 것처럼 1990년대 초 ‘피카소거리’로 불리게 되었고, 피카소거리를 중심으로 홍대 특유의 소비문화는 더욱더 확산하게 되었다.

1993년 <홍대신문>에 개재된 홍익대학교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답변자의 90% 이상이 홍대 앞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정도로, 1990년대 이후 홍대 일대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라이브클럽’과 ‘댄스클럽’이 하나둘 생긴 것도 이때다. 이미 1970년대부터 통기타 포크 음악 위주의 라이브카페가 형성되었고, 1980년대 록카페를 중심으로 록 음악이 많이 연주된 신촌 일대의 지리적 인접성이 홍대 앞의 성장을 도왔다. 마침 신촌이 1990년대 들어 세간에 퇴폐 향락공간으로 인식되어 비판을 받고, 행정당국 단속의 철퇴를 받으며 쇠퇴하고 있던 참이었던 것. 이들은 자연스레 신촌을 떠나 서울시의 도시계획 아래 일대가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된 홍대 앞을 주목했다. 그렇게 1993년 ‘라이브 카페 락월드’가 생겨났고, 1994년에는 ‘드럭’ 이 생겨나 1995년 ‘커트 코베인 1주기 추모 공연’을 계기로 공연을 상설화했다. 급기야 IMF를 앞두고 버블경제가 최고점에 이르던 1996년 5월, 드럭 주관으로 홍대 앞과 명동 길거리에서 개최된 ‘스트리트 펑크쇼’는 홍대 앞 라이브클럽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만 드럭, ‘스팽글’, ‘빵’, ‘프리버드’, ‘재머스’, ‘하드코어’, ‘마스터플랜’, ‘롤링스톤즈’ 등 10여 개 라이브클럽에서 50~100개의 밴드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공연을 펼쳤다. 댄스클럽 역시 홍대 앞 클럽 문화를 다른 축으로서 견인했다. 작업실의 형태를 띤 일종의 ‘바’로서 댄스클럽의 원형이 된 ‘발전소’를 시작으로 ‘황금투구’, ‘명월관’, ‘상수도’ 등 제각기 색깔을 지닌 ‘복합문화공간’이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다.

클럽 명월관 외부 전경 © 서울역사아카이브

 

제2기(2007~2011년)

인지도와 상업성이 급격히 팽창함과 동시에 홍대의 댄스클럽의 수는 2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01년, 서울 월드컵 경기장과 인접하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기도 하는 홍대 앞 클럽들은 좋은 관광상품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01년 3월부터 홍대 앞 클럽들이 연합해 ‘클럽데이’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클럽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 홍대 앞 클럽 문화는 상업자본의 지속적인 유입 속에서 예술과 소비의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주말이 되면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관객으로 들어차던 라이브클럽은 2000년대 초에 이르러 수십 명의 마니아만 찾아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 되었으며, 오히려 댄스클럽은 주말마다 춤을 추러 오는 레이버들로 가득 찼다. 홍대 소비문화와 공간문화를 이끌던 문화 정체성이 뒤바뀐 것이다. 이 지역에 여러 사업체가 몰리면서 지가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본래 홍대를 점유하던 홍익대학교 재학생과 예술가 등의 거주인구는 거꾸로 감소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게 되었다. 동일 기간 물가가 크게 상승한 것에 비해 공연 입장료는 전혀 오르지 않고, 관객이 한참 줄었음에도 임대료가 폭등한 것을 생각할 때 공간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 만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 노출 사건은 앞서 신촌 일대가 그랬던 것처럼 홍대 앞 문화에 대한 행정당국의 단속으로 이어졌다.

삼거리포차 거리의 모습(2017). 과거와 현재 모두 클럽과 주점이 밀집되어 있어 홍대앞의 유흥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이곳의 지나친 상업화를 대표해 보여주기도 한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첫 번째 전성기 이후 곧바로 찾아온 홍대의 상업화 및 라이브클럽의 침체라는 첫 위기에도 그 이면에서는 다행히 새로운 물결이 인디음악 신에 일고 있었다. 2000년에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홈 레코딩 제작시스템을 통한 인디 음반 기획, 발매 시스템이 본격화된 것이 그 한 축이었다. 이때 생겨난 작지만, 색깔이 분명한 많은 인디 레이블은 상업 논리로 무장한 비즈니스 시스템 아래에서도 뮤지션에게 어느 정도 그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다.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하는 인디 음반이 200장을 넘길 만큼 절대적인 생산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물론 단지 숫자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2006년부터 각 인디 레이블은 독자적인 스타일이나 합리적인 시스템, 음악의 작품성을 두루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중 하나로 2005년 활동을 시작한 초소형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장기하’라는 대형 스타가 탄생하기까지 한다. ‘홍대’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 지역성을 벗어난 인디음악은 이후 2005년 광명음악밸리축제, 2006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07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09년 지산 록 페스티벌 등 대형 페스티벌 탄생에 힘입어 어엿한 주류 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WHO 홍대 전성시대의 황금 세대는 ‘누구’?

전성시대가 있다면 그것을 이끈 황금 세대도 있는 법이다. 홍대 인디음악 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체는 누구일까? 물을 것도 없이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음악 혹은 예술의 진정성을 작품과 무대 자체에 투영하려 했던 ‘뮤지션’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음악을 직접 만들고, 무대에서 선보이는 아티스트 본인만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 녹음과 무대 제공까지 생산 과정에 폭넓게 기여한 집단을 일컫는다. 맹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홍대 인디음악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와 조력자들의 존재만으로 장소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자 못지않게 중요한 주체는 그런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혹은 마찬가지로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다. 아무리 좋은 입지에 색다른 장소가 생겨도 찾는 이가 없다면 그곳은 무용지물이다. 홍대 인근의 최초 부흥은 결국 이곳에 자유분방한 사고와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지식인과 반주류적 문화 소비자가 대거 유입된 것이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다. 해당 장소를 지속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나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이 묻어나는 작고 개성 있는 식당, 카페, 바, 라이브클럽, 댄스클럽, 대안공간 등이 등장함으로써 조용한 주택가였던 홍대는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993년 9월 25일 '한겨레' 13면,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홍대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홍익대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 역시 홍대의 쇠락을 부추긴 소비문화 향유애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무조건적인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홍대 앞의 정체성과 건강한 대학문화를 지키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부터 홍익대학교 미대생들에 의해 시작된 ‘거리미술전’이다. 이전까지 교내 행사로 치렀던 이벤트를 ‘미술의 대중화’와 ‘삶 속에서 이뤄지는 실천 미술’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주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보강해 교외 행사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거리미술전의 성과는 홍대 앞 ‘벽화거리’의 조성으로 이어졌고, 이후에도 지역의 주체들은 직접 대안문화를 생산하고자 힘씀으로써 1998년 퍼포먼스 공연장 ‘씨어터 제로’의 개관’, 2000년대 이후 ‘프리마켓’과 ‘프린지페스티벌’ 등 새로운 대안적 문화 창출을 이어 나갔다. 지역 주체들의 이러한 대안문화 추구는 홍대 앞을 다른 소비공간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홍대앞에서 열린 프리마켓 풍경(2005) © 서울역사아카이브

사람들이 장소에 관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장소성을 분석했던 황준기, 오동훈(2015)의 연구를 보면, 홍대는 비슷한 시기에 떠오른 다른 지역인 가로수길, 세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과 대조해 훨씬 동적이고 신선한 이미지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이곳은 단지 트렌드에 부합하거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공간(가로수길, 세로수길)이 아니었으며, 신나고, 유쾌하며 즐기는 공간(이태원)도 아니었다. 설레고, 색다르며,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홍대)이었다. 따라서 지역의 부흥을 이끈 다른 곳과 비슷한 소비 지향 문화 속에서도 홍대만큼은 문화예술 향유 비중이 월등히 높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홍대 앞의 전성기를 이끈 이들은 이곳의 최초 장소성이 지닌 특유의 대학문화와 반주류적 청년문화를 선망하고, 지키고자 이곳을 드나들었던 사람들 그 자체다.

 

WHAT 그때의 그들은,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홍대 전성시대를 돌이켜본 물음의 근원을 파헤쳐 본다. 왜 우리는 홍대의 전성기를 그리워하고, 우리 동네로, 옆 동네로 그것을 초혼하고 싶어하는 걸까? 결국 홍대가 대표하는 ‘인디음악’이라는 단어가, 그것의 정체성이 장르나 시스템 차원의 의미를 넘어 ‘independent’라는 말 그대로 ‘독립된’ 문화 양식을 이끌고 대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때, 이곳은 어느 때보다 독립성이 존중받는 시기였고, 그로 인한 창조적 혁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기도 했다. 심지어 때로는 이렇게 한 장소에서 출발한 독립문화와 예술이 전체 주류 문화의 흡수를 통한 순환을 겪기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문화의 종적 다양성과 혁신성을 보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디밴드'의 음악장르는 '독립정신'. 인디음악이 오늘날 비록 온전히 '독립적인' 음악이라거나 음악 제작 과정을 거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다양성, 독창성의 기반이 되는 독립성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1월 1일 '경향신문' 31면,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러니저러니 해도 국내 인디음악은 아직 대부분 홍대로 통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특정 지역이 독립 문화나 예술을 이토록 장시간 대변한 때가 있었나 떠올려 본다. 먼 옛날 지역에 따라 다른 발전 양태와 특성을 보였던 전통음악이 있었지만, 근대의 녹음 기술이나 현대의 자유로운 교통과 왕래가 있기 전이었다. 부산, 인천, 대구 등 과거에도 현재도 제2, 제3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 신이 확실히 존재하지만, 그것의 성장은커녕 자생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게다가 살펴본 바와 같이 남다른 홍대의 전성시대조차 비단 한두 주체의 노력이나 확고한 의도의 산물이 아닌 여러 비결과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역사의 반복은 절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그 어느 곳도 1996년의 홍대나 2007년의 홍대가 될 수 없다. 이는 지금의 홍대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과거 부흥을 반추하고 교훈 삼아 현재의 홍대, 현재의 대구는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지역 기반 음악,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문화예술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싹을 틔우고, 뜻밖의 곳에서 꽃을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고를 마친다.

 

 

 

참고문헌

박준흠 책임편집(2009), <한국의 인디 레이블>, 선.

서울역사박물관(2017), <서울의 문화발전소 홍대 앞>, 서울역사박물관.

이동연(2004) '[기획: 공간의 문화적 분석] 공간의 역설과 진화: 홍대에서 배우기', <문화과학> 39, 2004.09, 180~193쪽.

이정엽(2010), ‘홍대 앞 인디음악 씬의 문화경제’, <대중음악> (6), 68~96쪽.

차우진(2014), ‘도시계획과 홍대 앞 인디씬 왜 1996년인가?’, <플랫폼>, 68~73쪽.

황준기, 오동훈(2015) '문화주도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의한 장소성 변화 연구', <한국도시행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197~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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