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관찰자' 전유동 인터뷰

2020. 12. 24. 13:16BIG9_PEOPLE_INSIDE

코로나19 시대의 1집 가수 관찰기,

숲 관찰자 전유동인터뷰

 

 

 

불과 얼마 전까지 ‘클라우즈 블록’(Cloud’s Block)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익숙했던 그. 경북 출신으로서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어느새 인천을 대표하게 된 싱어송라이터. 코로나19가 잠깐 소강 상태를 보인 가을 바람 부는 저녁, 데뷔 싱글 이후 5년만에 정규 1집을 발표한 전유동을 빅나인이 만났다. 멋스런 트렌치 코트를 입고 나타난 그는 ‘가을 남자’라기엔 지나치게 겸손했고, 수줍다기엔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듯했다.

 

l  인터뷰이 : 전유동

l  인터뷰어 : 정병욱(빅나인)

l  인터뷰 사진 및 영상 : 김캡틴(빅나인)

l  인터뷰 일시 : 2020년 10월 27일

l  인터뷰 장소 : 합정 디벙크 및 성산중학교 일대

 

 


 

1. 앨범 발매와 소감

더 늦을 것 같아서그랬다고 말했어요. “오늘이 지나면 또 안 될 것 같아서.”

 

빅나인: 안녕하세요? 올해 8월 정규앨범 발매 후 벌써 3개월 넘게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전유동: 이번 정규앨범 전에는 EP나 싱글을 제작하면서 제 힘을 더 많이 들이고, 제 품을 더 많이 들여야 했어요. 편곡이며, 제작, 앨범 커버 디자인 전부 제가 직접 했거든요.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없어 모든 걸 혼자 해야 했어요. 사실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계속 혼자 있다 보니 부탁하는 방법을 점점 까먹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혼자 했죠.

 

빅나인: 그런데 이번 정규앨범 때는 그렇지 않은 거군요.

 

전유동: 네. 정규앨범 때는 단편선 님께 용기를 내서 부탁을 드렸어요. 부탁하는 방법을 까먹었다는 게 ‘어떻게 말해야 실례가 안 될까?’, ‘어떻게 물어봐야 하지?’ 이런 소소한 것들을 고민했던 건데, 당시에 편선 님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상태라서 용기를 낼 수 있던 거죠. 하필 밤 10시에. (웃음) 마침 단편선 님은 술을 마시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프로듀싱을 부탁드리고 싶다.”고 대뜸 말씀드렸더니 “아니, 그걸 왜 지금!? 그리고 전화로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제가 “더 늦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어요. “오늘이 지나면 또 안될 것 같아서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드렸다”고. 그렇게 정규앨범 제작에 들어갔어요.

 

 

오소리웍스 단편선 프로듀서 / 선공개 된 '무당벌레'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빅나인: 모든 걸 혼자 하시던 때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전유동: 편선 님 덕분에 이전에 만들었던 작업물들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닌 함께 제작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느끼고요. 무엇보다 ‘관찰자로서의 숲’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팬들의 피드백과 다양한 리액션 덕분에 굉장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공연도 많이 없고 하지만요.

 

빅나인: 피드백을 주로 어떻게 받고 있나요?

 

전유동: 제 앨범에 대해 콕 집어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오기도 하고요, SNS상에서 피드백이 오기도 하고요. 공연 때도 오셔서 사인도 받으시고, 직접 좋다고 해주시고 하는 모든 것들이 제게는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고, 행복했어요.

 


 

2. 진로 선택 및 대구·경북 활동기

그래야 쌓여 있는 CD를 보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요.”

 

빅나인: 이번 앨범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정규앨범에 관해 더 묻기 전에 아무래도 그 이전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히 드네요. 경북 칠곡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전유동: 원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5~6살까지 살다가 칠곡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경북에서 하다가 대학교를 갔죠. 대학교도 경북이에요. 경산의 영남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부터 음악활동을 했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있어요.

 

빅나인: 그때 어떤 걸 하셨는데요?

 

전유동: 대학교 전공은 국어국문학이었는데요.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그저 가사를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어서였어요.

 

빅나인: 대학교 가기 전부터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셨던 거네요.

 

전유동: 네, 맞아요.

 

빅나인: 언제부터였나요?

 

전유동: 고등학교를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음악이 아니라 미술로요. 원래 꿈이 만화가였거든요. (웃음) 그런데 예고를 진학하고 보니까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사실 저는 진학 자체에 운이 좀 따랐던 게, 예술고등학교마다 실기대회가 있는데 거기서 수상을 하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좀 졸랐어요. “이건 제가 제 힘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고요. 집에서 예고까지 거리가 꽤 멀었거든요. 그런데도 떼를 썼어요.

 

빅나인: 대회에서 수상을 하셔서.

 

전유동: 네. 그런데 우연한 기회를 잡은 저와 다르게 일찍부터 대학까지 바라본 친구들은 이미 학원에서 아그리파를 안 보고 그리는 수준까지 배우고 왔던 친구들이더라고요. (웃음) 처음부터 이건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더라고요. 부모님께 다시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고 했죠. 인문계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였어요. 당시 저는 예고를 꿈꿨다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면서 일찍부터 제 자신이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 같아요.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었죠. 그런 심정을 위로해주는 게 기타 연주였어요. 취미로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으로 눈을 돌려버린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빅나인: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지하게 하실 생각을 하신 거군요?

 

전유동: 그때도 사실 좀 늦었던 것 같아요. 진지하게 하려고 보니 대학도 음악대학으로 가고 싶었는데, 음대를 가려면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하더라고요. 음대를 가야 하겠다고 다짐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때였는데, 1년 안에 입시 준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러면 나는 내 이야기를 좀 더 잘 쓰고 싶고, 노랫말로 나만의 이야기를 확실히 전달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을 했죠. 

 

 

클라우즈블록의 전신 밴드 '달빛2장' 버스킹 장면 (좌측부터 허훈, 전유동)

 

 

전유동: 운이 좋게도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솔직히 1학년 때는 전공이 음악에 전혀 도움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안에 음악 좋아하는 형(허훈)이랑 팀(달빛2장)을 꾸려서 활동을 하게 됐죠. 그 형이랑 단 둘이서 했어요. 그리고 활동 중에 학교에서 알게 된 다른 동생(권영석)이 젬베 연주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3명이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게 됐는데, 앨범을 제작할 당시에 멤버들이 젬베나 피아노 연주, 코러스, 퍼커션 이런 것들을 도와줬어요. 그렇게 시작을 했죠.

 

빅나인: 클라우즈 블록 활동을 시작한 게 대학 다니실 때였군요.

 

전유동: 네.

 

 

클라우즈블록 허훈, 전유동, 권영석

 

 

빅나인: 2011년경이었나요?

 

전유동: 2012~2013년이었어요.

 

빅나인: 그때는 활동을 주로 어디서 어떻게 했나요?

 

전유동: 일단 거의 뭔가를 할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학교 정문이나 대구 동성로에서 버스킹을 하는 정도였죠. 경북대학교 북문에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두 군데 정도 있었는데 거기에 신청해서 공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빅나인: 클라우즈 블록 싱글이 처음 나왔던 게 2015년이에요. 동명의 이름으로 데뷔 싱글을 발매하셨어요.

 

 

전유동의 데뷔싱글 <Cloud's Block> 2015년 作

 

 

전유동: ‘달빛2장’과 공연을 마무리 짓고 앨범을 내면서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그 후 그냥 제 이름 ‘전유동’으로 활동을 할 때 제 나이가 스물 여덟이었어요. 이제 스물 아홉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학을 가면서부터 ‘나는 음악을 할거야.’, ‘음악을 하고싶어.’라고 공언하다시피 주위에 떠들고 다녔는데, (웃음) 거의 8~9년이 되도록 결과물이 없는 거예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님께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도노반과 제3행성 송재돈 / 현재 뉴웨이브펑크밴드 <신도시>로 활동하고 있는 대구 인디씬의 터줏대감

 

전유동: 그래서 ‘결과물을 내자.’라는 마음을 갖던 차에 대구에서 활동하는 ‘도노반’의 재돈이 형(송재돈)을 만났죠. 그간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알았는데 사석에서 처음 뵙게 된 거였어요. 제 상황에 대한 조언을 잔뜩 주시더라고요. “음반을 내라.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잘 아는 곳을 연결해주겠다. 그것도 CD를 꼭 내라.”

 

빅나인: 피지컬 음반을 꼭 내라고요? 특이한 조언이네요.

 

전유동: 네. 그래야 쌓여 있는 CD를 보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요. “처음 진입하는 뮤지션들은 그런 면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앨범을 내면 그저 기분이 좋아서 ‘나 이제 열심히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좋지만 재고로 남은 CD를 보면서 ‘저걸 내가 어떻게 팔아야 할까?’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일찍부터 접근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다.”라는 의미였어요. 그렇게 녹음실까지 연결해 주셨고, 이전에 데모로 만들었던 두 곡을 작업해 발표하게 되었어요.

 

빅나인: 싱글 <거리거리>와 <데이지>가 그렇게 나왔군요? 안 그래도 국어국문학과 나오셨다고 해서 역시나 싶기도 했어요. 초창기 곡들도 그렇고, 최근 곡들도 그렇고 전유동 님 노래는 ‘말’ 자체에 관심이 많다거나 가사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전유동이라는 아티스트의 장점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국어국문학과 나오셨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끼워 맞춰지는 듯하네요. (웃음)

 

전유동: 감사합니다.

 

빅나인: 그런데 그게 그냥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음악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게 선택한 거라고 하시니 굉장히 멋져요. 처음 앨범 냈을 때 거의 혼자 힘으로 했다고 하셨는데, 앨범 커버도 직접 그리신 것 같아요.

 

전유동: 네. 포토샵을 못 했는데, 그냥 인터넷에서 단축키나 기능 같은 것들을 찾아가면서 했어요. 거의 효과를 떡칠 하다시피 했죠. (웃음) 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모르니까, 먼저 해보고 되돌리고, 해보고 되돌리고 반복하면서 앨범 커버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빅나인: 클라우즈 블록 당시 앨범 커버에 항상 클라우즈 블록 상징이 있어요. 레고 블록으로 되어 있고, 항상 하늘과 구름이 배경인데요. 가운데에 뻥 뚫린 건 블록이 마치 창처럼 하늘을 비춘다는 뜻인가요?

 

 

전유동의 두 번째 싱글 <Sky Latte> 2015년 作

 

 

전유동: 사실 그 구멍 속에 내면에 응집된 어두움을 형상화 하고 싶었는데 제 능력으로는 그게 표현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웃음) 겉은 밝고 하얗지만, 안에는 좀 어두울 수도 있고. 한편 밖에서 비치는 빛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복합적인 내면을 커버만이 아니라 곡으로도 형상화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만들게 된 곡이 <거리거리>였죠. 초창기에 슬픈 노래가 잘 써져서 그랬는지 밝은 곡이지만,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런 작업들을 좀 더 해보고 싶었어요.

 

빅나인: 첫 싱글 발표 후 활동은 어떻게 했나요?

 

전유동: 제가 첫 번째 싱글을 냈던 날짜가 4월 1일이었거든요. 그 날짜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8년 동안 ‘난 음악할거야.’라는 말을 해왔는데 그게 계속 불발이 됐잖아요. 정식 싱글 발매 전에 데모가 완성돼 있기도 했고, 이것저것 해보려 했는데 계속 불발이 되다 보니까, 막상 4월 1일에 정말로 싱글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전부 거짓말인 줄 알더라고요. 마침 만우절이었어서. (웃음) 기억을 할 수밖에 없었죠.

 

빅나인: 미러볼뮤직에서 발매를 했어요.

 

전유동: 원래 발매 5개월 전인 2014년 11월에 녹음을 다 마친 상태였어요. 이제 유통사를 알아보는데, 미러볼에서 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장 빠른 발매일이 4월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해달라고 했어요. 발매일을 기다리면서 두 번째 싱글 <Sky Latte> 작업에 바로 들어갔죠.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연도 몇 번 하고. <Sky Latte> 녹음이 끝낸 뒤 서울로 올라왔어요.

 

 


 

3. 첫 서울 생활 그리고 가사에 관한 고민

거기서 받았던 피드백은, “좋은데, 너무 어렵다라는 거였어요.”

 

빅나인: 첫 싱글과 두 번째 싱글 사이 기간이 짧은데 그 사이 지역에서의 활동은 별로 없었던 거군요?

 

전유동: 네, 없었어요. 당시 공연을 하려면 결국 대구에 가야 했는데, 대학 졸업 후 경북 본가에 있다 보니, 공연을 위해 기차 타고 왕복을 해야하는 거예요. 그 순간의 피로감이 굉장히 컸어요. 기차를 타고 가서 공연을 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오거나 아니면 아는 선배 집에서 하룻밤 묵고 돌아오고. 이런 과정이 전부 너무 희망 없어 보였어요. 열심히 하고는 싶은데 너무 소비적이었던 거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주위 뮤지션들 보면 다들 그렇게 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더 진행을 하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자’라는 결론에 도달을 해서 서울로 올라왔죠.

 

빅나인: 나름의 큰 결단을 하신 거잖아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유동: 일단 부모님께서는 크게 말리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걱정은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티는 안 내려고 하시는데 그게 겉으로 전해지는 거. ‘내 생각보다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는구나’ 알게 됐어요. 재밌는 게 부모님 외에 주변에서는 ‘곧 내려오겠지.’, ‘그래, 네 선택이니까.’정도로 생각하더라고요. 일찌감치 서른이 되기 전에 서울에서 공연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주변에 했었기 때문인지 “열심히 해봐.”’가 아니라 “갔다 와.”였어요.

 

빅나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거군요.

 

전유동: 네, 정말 그야말로 “잘 갔다 와~”. (웃음) 반드시 돌아오는 게 전제가 된 말이었죠. 그런데 저는 상처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상황들이 좀 웃겼어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하겠다.” 공언 해놓고 지지부진했던 제 결과들을 감안할 때 제 업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계속 반문했거든요. ‘내가 정말 치열했을까?’, ‘이렇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건 내가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었죠. 그래서 무조건 서울에 올라가 벼랑 끝에 내몰리면 제가 아무리 좀 게으른 성정이어도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빅나인: 서울에서의 첫 생활과 활동은 어땠나요?

 

전유동: 운이 좋게도, 대학교 시절 같은 과의 동기 형이 서울에 먼저 올라와서 살고 있었어요. 보문역 방면 투룸에서 살고 있었는데, “내가 너한테 월세를 많이 받겠니?”라면서 월세 50만 원 가량 중 저에게 15만 원만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으로 올라갔어요. 형 덕분에 집 구하는 어려움이 없었죠. 올라가기 전에 공연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오픈 마이크’를 알게 됐고, 그밖에 꼭 공연해보고 싶었던 곳들의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신청 방법 등을 함께 정리해서 마구잡이로 신청했던 것 같아요.

 

빅나인: 기분이 어땠나요?

 

전유동: 음악은 오래 전부터 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막상 처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무척 신났어요. 공연이 없을 때에는 보문에서 혜화까지 걸어 다녔어요. 앰프랑 마이크 스탠드랑 기타를 들고요. 지하철을 타면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걸어서 한 40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죠. 그렇게 가서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버스킹 하고 그랬어요.

 

빅나인: 그렇게 활동하다가 2017년에 EP를 냈는데, 제목이 특이해요.(‘6-9-77’) 혹시 어떻게 읽는 거예요?

 

 

전유동의 첫 번째 EP <6-9-77> 2017년 作

 

 

전유동: 그냥 ‘6다시9다시77’이에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묻힌 묘비 번호예요. 저희 할아버지가 천주교인이신데 묘지에 많은 분이 계시다보니 식별 번호를 붙인 거죠.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바치는 헌정 앨범이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빅나인: 첫 EP였는데 결과가 만족스러웠나요?

 

전유동: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첫 번째 싱글과 두 번째 싱글을 제작하면서 느꼈던 건 ‘아쉬움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첫 번째 싱글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두 번째 싱글을 통해 보완했고, 두 번째 싱글에서 부족한 점을 세 번째 EP에서 보완을 하는 식으로 계속 앨범을 내왔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괜찮았어요. 대신에 옆에서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쉬웠어요. 당시에는 프로듀서의 개념이나 그것의 실질적인 필요성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혼자 녹음실 가서 녹음하고 오고, 그런데도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그저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한 EP였거든요.

 

빅나인: 특별히 마음에 안 들거나 신경 쓰였던 부분이 뭘까요?

 

전유동: 프로듀서가 없다 보니까 제작 기간이 점점 길어지더라고요. 누군가가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조정을 하고 결정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녹음실에 있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졌어요. 저 혼자 ‘이렇게 한번 해볼게요.’, ‘저렇게 한번 해볼게요.’ 이럴 수밖에 없었죠.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집중력도 떨어지고요. 처음에는 굉장히 파이팅했었는데 말이에요.

 

빅나인: 반대로 EP에서 보완하려고 했던 점은요?

 

전유동: EP 작업하면서 생각했던 건 ‘리얼 세션을 써보자’ 하는 거였어요. <밤, 너>라는 트랙을 드럼, 베이스, 첼로 세 악기로 녹음했는데, 나머지 세 곡은 당시에 돈이 없어서 제가 하는 기타 연주 외에 다 MIDI로 대체했죠. 그런데 너무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이전 싱글을 통해 생각했던 부족한 점을 보완을 하긴 했는데, 이게 방향이 맞나 싶기도 하고요. 게다가 할아버지께 헌정하는 앨범이어서 더 고민이 컸던 것 같아요.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능력의 한계는 있으니까.

 

빅나인: 아무래도 생각하신 많은 고민이 곳곳에서 묻어나요. 전에 없던 긴 라이너노트도 EP에 들어갔어요. 직접 쓰신 건가요?

 

전유동: 네, 맞아요.

 

EP <6-9-77> 라이너스노트
Cloud’s Block의 첫 번째 EP앨범 [6-9-77]

“백만 번 닿았다 백만 번 잠기는 깊은 밤 꿈속의 너”
두 번째 싱글 앨범 이후에 찾아온 클라우즈 블록의 첫 번째 EP앨범 [6-9-77]은 이전에 들려주었던 노래들보다 조금 더 짙은 클라우즈 블록만의 “시선”과 “색깔”이 담겨있다.

‘Window’는 유리창에 비춰지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김 서린 유리창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쓰며 그리운 이의 유리창에도 나의 이름이 써지길 기도한다.
‘환풍기를 켰어요’는 이별 후에 찾아오는 고민들로 인해 마음의 환풍기를 상상하는 노래이다. “이 사람이 없다면 나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빨리 마음속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라는 이 두 가지 고민 중, 어떤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그때에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마음속에 있는 환풍기를 작동시켜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생각은 나가게 하고 좋은 생각이 들어온다면 난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
‘밤, 너’는 비가 오는 밤에 떠오르지 않는 이의 얼굴을 생각하는 과정 속,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심상들을 그대로 담아낸 노래이다. ‘밤, 너’는 클라우즈 블록만의 음악적 색깔이 비교적 짙고 조금 더 무거우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이다.
‘둥글게 굴러가는 네모난 나’는 나아가고 있는 길에서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닐까? 남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고민,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받은 상처들로 네모 낳게 각이 져버린 우리들을 얘기하고 있다. [둥글게 굴러가는 네모난 나]는 자신이 받았던 상처들과 남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물음을 등진 채 “빙글빙글 돌아가며 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는 긍정적인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하고 확인 받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은 겉으로 드러나는 선택과 행동으로 많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음악 또한 이와 똑같거나 때로는 더욱 예민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라는 뮤지션의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물음과 매우 밀접한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답을 찾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클라우즈블록 또한 지금 그런 물음에 답할 수 없겠지만 “난 아무래도 이런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라고 이번 앨범을 통해(부족하게나마) 답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리스너들만의 고민들과 과정들도 [6-9-77]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빅나인: ‘나는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물음으로 연결한 점이 많이 공감됐어요.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벽에 부딪쳤다고 생각하신 건 그때까지 모든 걸 다 혼자 하다 보니 더 그러신 것 같아요. 당시 생각이 이후의 작업이나 제작에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됐나요?

 

전유동: 아무래도 이전에 안 했던 뭔가를 더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바로 그 뒤의 싱글인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작업할 때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창작지원금을 처음 받았거든요? 당시에는 서류가 거의 12개 가까이 됐었는데, 그걸 어렵사리 준비해서 받은 돈으로 만든 싱글이었어요. 끝내자마자 ‘이번에는 다른 데서 또 지원을 받아보자.’ 생각이 들었죠. 마침 네이버 뮤지션리그에서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서 지원을 받아서 녹음을 하게 되었고요. 그 시기에 제가 아는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만났던 뮤지션들 뿐인데 몇몇을 모아서 노랫말 스터디를 구해보기도 했어요. 12명이나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홍대 ‘티움’이라는 공연장에서 다같이 노랫말 스터디를 했죠. 거기서 받았던 피드백은, “좋은데, 너무 어렵다”라는 거였어요. “좀 더 쉬우면 접근하기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기분이 나쁘거나 했던 건 아니고, 애정 어린 피드백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무척 고마웠거든요? 그래서 그걸 극복해보려고 되게 쉽게 써보려고 노력하고, 검사도 받아보고 했어요. “이건 어때?”, “이건 좀 쉬워?”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일까?’,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건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도 나의 모습이라면 내가 스스로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심지어 곡을 만든 후에도 성취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전에 EP 라이너노트에 있는 질문을 다시 하게 돼요.

 

빅나인: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때 말이죠?

 

전유동: 네. ‘그냥 한번 나대로 써보자.’ 그런 곡이었어요. 아주 그냥 청개구리처럼. (웃음) “형, 쉽게 써보는 거 어때?”라는 말을 묵살해버리고, “이게 나야.” 외치듯이 됐어요. (웃음) 그런데 하고 보니 진짜 그게 나더라고요. 거기서 알게 된 거예요. ‘어떻게 하겠어. 이게 난데.’

 

빅나인: ‘이게 나야.’ 하는 심정으로 솔직하게 돌아오셨다고는 하지만 외적으로 보면, 그 시점부터 가사의 소재나 관점이 크게 달라지잖아요. 자연을 노래하고, 일상 주변의 것들을 노래하는 식으로요.

 

전유동: 당시에 대구에서 활동하던 ‘오늘도 무사히’ 태현(엄태현)이가 제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태현이 같은 경우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옮기는데, ‘나는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하나의 고민이었어요.

 

 

싱어송라이터 <오늘도 무사히> 엄태현

 

전유동: 나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마침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라는 제목을 쓸 수 있게 해준 장소에서 그런 고민을 했어요. 거기가 남산골 한옥마을이거든요. 당시 거기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가 봄과 여름에 정말 예뻐요. 남산이다보니 새들도 정말 많이 오고, 그림책으로 보던 새들도 발견하고,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참새들도 사람들 옆을 막 날아다니고 너무 예쁜 곳인데, 거기 앉아서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걸까?’ 고민을 하니까 지금 이 풍경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큰 거예요. ‘맞아. 나 항상 사람들한테 새 얘기하고, 오늘 달이 예쁘면 친한 사람들한테 달 보라고 하고. 그런 풍경을 음악으로 전하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그 자리에서 바로 가사를 썼어요. 제가 느끼는 지금 이 풍경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저는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에 나오는 가삿말이 제가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봄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아, 이렇게 전달하면 되겠구나.’ 하는 발판이 마련되었어요.

 

빅나인: 사실 가사에 많은 공을 들이는 아티스트들이야 얼마든지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 중에 그만의 특색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같은 텍스트 중에 비교하면 누구의 가사는 에세이 같기도 하고, 누구는 소설 같기도 하고요. 전유동 님의 가사는 어떨까요? <주안>의 가사에 “내가 읽던 시집을 보여주며 말하고 싶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평소에 시를 좋아하시나요?

 

전유동: 시를 좋아하긴 하는데, 생각보다 시집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아요. 대신에 거의 연례 행사처럼 <파이돈>(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 중 대표작) 을 읽은 지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해마다 그 책을 다시 읽어요. 빨리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읽을 때마다 책의 아래와 위가 접혀 있어요. 해당 페이지에서 감명을 받거나 이해를 하면 접곤 하는데, 다시 읽을 때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접혀 있지?’ 싶으면 도로 펴요. (웃음) 그러다가 또 뭔가 ‘이 장을 다시 읽었더니 느낌이 새롭다’ 하면 다시 밑을 접기도 하고요. 사실 올해는 앨범 작업 때문에 아직 못 읽었는데, 얼른 읽어야겠네요. 나머지는 주로 책보다 자연에 확실히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새나 동물에 관한 정보들을 더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인터넷 알고리즘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유튜브로도 많은 소식을 듣고요. 뉴스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철새 도래지가 없어진다거나, 평생 동물원에서 살다가 빠져나와 사살된 퓨마 ‘호롱이’ 같은 이야기나, 어촌의 어망에 갇혀서 죽게 되는 작은 새들 이야기나. 제가 주로 읽는 텍스트는 그런 것들인 것 같네요.

 

빅나인: 유동 님이 가사에 다루는 것들이 다른 아티스트가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다 보니 느껴지는 신선함이 큰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남들이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다룰 때, 그것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겁게 느껴지기 쉬운 측면이 있는데 유동 님의 가사 속 정보나 이야기는 그런 것들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주제나 소재의 변화 또한 나름의 큰 변화인 건데, 이런 변화에 관해 주변의 반응도 있었나요?

 

전유동: 제가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주변의 시선이 어땠는지를 관찰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하셨다시피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경계를 많이 했어요. 일상에서 제가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비건도 아니고, 육식도 하고있고,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어도 솔직히 “환경을 지킵시다 여러분!”이라고 이야기를 할 만큼의 생활 속 실천을 많이 하고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풍경들이 있고, 지나칠 수 있겠지만 한 번 봐주세요.’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빅나인: 이때부터 박은국 작가님이 앨범 아트워크에 함께 해주신 것 같은데 그 인연은 어떻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군 시절 부터 인연을 맺은 전유동(좌측 두 번째)과 박은국(맨 우측)

 

 

전유동: 은국이 형과는 인연이 남 달라요. 군대에서 만났거든요. 형이 후임이었고요. 그런데 그때 당시 형이 드럼을 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은국이 형이 오기 전까지 친했던 다른 형이 늘 “내가 상병이 되면 꼭 밴드를 만들 거야. 그러니까 우리 같이 밴드하자.”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었는데, 8개월이 지나 갑자기 드럼 치는 은국이 형이 들어오고, 그 동기로 베이스를 친다는 친구가 한 명 온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거 진짜 상병 되면 밴드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음악 이야기를 하며 좀 친해졌어요. 서로 창작 활동에 대한 어려움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서로 완벽하게 다 알진 못하지만 그때부터 오랜 시간 봐왔기 때문에 더 믿어주고 의지해주는 사이였어요. 전역한 후 활동을 하며 은국이형 그림을 앨범 커버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는 했는데, 마침 기회가 된 거죠. 제가 형의 작품을 워낙 좋아하는데 ‘비용도 줄 수 있다면 형에게 자그마한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커버 이미지는 원래 형의 그림이 아니라 조각품이었는데, 그 하얀 얼굴 조각이 제가 곡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것들이었어요.

 

 

싱글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2018년 作

 

 

 

전유동 : 누가 우는지, 왜 우는지, 어떤 새의 소리인지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까? 그리고 저 새가 어떤 새고, 저 벌레가 어떤 벌레고, 학명이나 이름을 굳이 알아야 할까? 저 있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데. 사람과 사람 간에도 편견이나 색안경 없이 순수하게 다가가는 것, 자연과 똑같이 순수하게 다가가는 것이 참 좋은데. 그래서 그 하얀 얼굴들이, 저에게는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딱 좋은 이미지였어요. 형이 인스타에 작품 올린 걸 보고 원본 좀 보내달라고 했죠. 형이 대신 양꼬치 사달라고 했는데 결국 양꼬치를 못 사주고 공짜로 쓴 그림이 돼버렸어요. (웃음) 그랬다가 이번에 정규앨범 하면서 그때 그걸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형에게 무척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지금은 형이 작품 의뢰나 작품 활동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는데, 그 전에는 이런 협업을 무척 조심스러워했거든요. “차라리 내가 이미 완성한 그림을 그냥 쓴다고 하면 괜찮은데, 음악을 듣고 같이 콜라보를 하는 건 내가 원하는, 내 진심이 담긴 작품이 안 나올 것 같아.”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무척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죠. 그런데 막상 얘기를 하다 보니까 말로는 그래놓고 이미 콜라보를 꽤 진행했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바로 (웃음) “그러면 같이 하자. 내가 돈 줄게.” 얘기를 하고,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받은 금액으로 크게 한 탕 줄 수 있어서 참 뿌듯하고 좋았어요.

 

빅나인: 해피 엔딩이네요. (웃음) 정규앨범 커버도 무척 멋지고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전유동: 형이 제 음악을 듣고 그려줬다는 사실에 고맙고 기분이 좋았어요.

 


 

4. 인천의 싱글을 낳은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근력

마흔이 되어도 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빅나인: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다음에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어요. 이권형 씨가 연락했던 건가요?

 

 

<인천의 포크> 기획자 및 싱어송라이터 이권형

 

 

전유동: 되게 뜬금 없었어요. <인천의 포크>라는 걸 처음 한다는데 되게 궁금한 거예요. 그 당시 파제 님 같은 경우 예전에 한 번 뵀던 정도였어요. 파제 님이 워낙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담긴 노래를 하는 분이라서 당시에 감명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인천의 포크’라는 타이틀로 인천에서 음감회를 한다는 거예요. 마침 저는 인천으로 이사를 와있던 상황이었고요.

 

빅나인: 언제 이사 가셨나요?

 

전유동: EP를 준비하던 도중이었어요.

 

빅나인: 생각보다 일찍 가셨네요.

 

전유동: 네. 제가 이미 인천 시민이기도 했던 만큼 ‘인천의 포크가 대체 뭘까?’ 너무 궁금했어요. ‘인천에 온지 얼마 안 되어서 난 잘 모르겠네?’, ‘어떤 게 인천의 포크일까?’ 하고 보러 간 거죠. 재밌는 일화가 있었어요. 직전에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싱글로 발매할 때 기획 일을 하시던 장율범 님이 제게 연락을 주셨었어요. 주변에 음원 유통을 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께 제 음악을 들려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한 번 만나서 음원 유통 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는 김에 그 분이 제 노래하는 것도 보고 싶어 하니까 이태원 오픈마이크에 신청하고, 그때 같이 보는 게 어떻냐고 하시더라고요. 좋다고 했어요. 이태원에 갔는데, 율범 님은 조금 늦게 오시고 그 분이 먼저 오셨어요. 명함도 건네주고 하셨는데, 본인도 오픈마이크를 참석하겠대요. (웃음) 왕년에 음악을 했는데 이제는 안 한다면서 기타를 빌려 달래요. (웃음)

 

 

프로듀서 단편선과 첫 만남

 

 

전유동: 그래서 ‘이 분 뭐지?’ 생각하면서 리허설을 했어요. 제 순서가 마치고 그 분이 올라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안경을 벗고 노래를 하는데 단편선 님의 <뿔>을 부르는 거예요. 게다가 부르는 것도 너무 단편선처럼 부른다고 싶어서 율범 님한테 저 분 너무 단편선이랑 똑같다고 말했더니 “단편선이에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단편선 님을 그렇게 만났어요. 그래서 당시 단편선 님 일하시던 곳에서 유통을 하게 됐지요. 그런데 ‘인천의 포크’를 갔더니 마침 편선 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또 뵈었죠. 저도 ‘인천의 포크’를 신선하게 봤고, 권형 님도 제 음악을 좋아해주셨어요. 그러더니 ‘인천의 포크’ 첫 번째 쇼케이스를 ‘인천 전국자랑’이라고 전국을 돌면서 할 건데 인천 공연 게스트로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첫 번째 공연을 하고 다같이 친해졌죠. 두 번째 공연 시작할 때 권형 님은 사실 앨범을 내지 못한 뮤지션을 찾고 있었어요. ‘인천의 포크’에 관한 주제나 대전제에 대해 같이 동의하고 함께 갈 수 있는 뮤지션이자 앨범을 내지 못 하고 발굴되지 못한 훌륭한 뮤지션을 찾는 게 목표였는데 저는 이미 앨범이 있었죠. 그런데도 권형 님이 함께 하자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다같이 기획도 하고, 약간 조별 발표하는 기분이었어요. 함께 아이디어도 내고, “으쌰으쌰” 하면서 포스터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굉장히 즐거웠어요.

 

빅나인: ‘인천의 포크’ 공연 참여 이후 ‘서울 변두리’는 앨범에도 참여하시게 되잖아요. 수록곡들은 당시에 만든 노래들인가요?

 

 

싱글 <인천의 포크 싱글 시리즈 Vol. 3 - 주안> 2019년 作

 

 

 

전유동: 네. 앨범은 같이 만들었지만 기획의 98% 정도는 권형 님이 다 했고요. 저는 제 음악만 만들었어요. 함께 하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당시에 곡이 잘 써졌던 것 같아요.

 

빅나인: 저도 이 때 나온 <주안>, <무당벌레>를 정말 좋아해요. <주안> 리뷰에도 썼지만 의성어나 의태어 사용도 찰떡이었고요. ‘어떻게 이런 곡에 이런 가사를 붙이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주안> 속 가사의 경험은 실화지요? 그리고 가사가 곡보다 먼저 쓰였나요?

 

전유동: 네, 맞아요. 두 가지 경험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 성당을 다녔는데, 아주 오랫동안 안 가다가 오랜만에 성당에 간 날, 미사를 마칠 때쯤 소나기가 퍼부었어요. 그래서 성당 밖으로 못 나가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집에 전화해서 데리러 와달라고 해서 가거나, 성당에 꾸준히 다닌 사람들은 수녀님께 우산을 빌려서 가는 거예요. 저 혼자 덩그러니 남았는데 비가 안 그쳤어요. 그래서 결국 혼자 집까지 뛰어갔죠. 또 하루는 겨울에 눈이 엄청 내렸는데,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도 있고 털어내면서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한 손으로 우산을 쓰고 가면서도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본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 성당에서의 일이 겹치면서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있어도 부를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환경 속에서 계속 음악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 ‘이런 생활을 내가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마흔이 되어도 나는 당연히 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는 했지만, 내가 이 모든 짐들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외로움이라는 병을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당시 썼던 글이 지금 정리가 되어 <주안>이 되었죠.

 

빅나인: 그렇게 외로움을 느껴서 만든 노래 <주안>이 함께 으쌰으쌰 해서 만든 ‘서울, 변두리’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한 것 같네요.

 

 

컴필레이션 <서울, 변두리> 2019년 作

 

 

전유동: 물론 거기서는 으쌰으쌰하며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지만, 정작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에 사무치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모호한 사람으로 지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다른 사람들과 더 파이팅을 한 점도 있는 것 같고요. 거기서 에너지를 좀 끌어오려고.

 

빅나인: 그런 생각이 <무당벌레>에서도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책에 나왔지만, 이 노래 제목의 부제가 ‘변두리 감성’이잖아요. 한편 드는 생각은 물리적 고향인 경북에서는 자책할 만큼 오랜 시간 나온 게 없었는데, 오히려 서울과 인천에서 만족스러운 활동들을 내며 변두리 감성을 노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전유동: <주안>의 경우 2절 첫 번째 벌스 가사가 “제자리는 저의 자리일까요. 자리는 잘 있을 수 있는 곳 아닐까”인데요.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인천도 내쫓기다시피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고, 대구에서 경북으로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대구시 안에서도 ‘뭔가 나는 겉돌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서울에 오니까 또 똑같더라고요. 거기도 외로움이 있고. 그래서 서울에 와서 첫 번째로 했던 게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어요. 일단 그때는 지하철 노선이 너무 익숙하지가 않아서 ‘취한 상태로 여기서 헤매다가는 끝장이 날 것 같다.’,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나를 보살펴 줄 사람은 여기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너무 ‘외로움’이라는 병에 묻혀 있을 때라서 한 번 마시면 큰 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술에 의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 마시게 되었어요.

 

빅나인: 어디서든 음악하실 때의 근력은 ‘외로움’이라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전유동: 그런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로 그게 곡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거든요. <무당벌레>를 쓸 때는 진짜 자칫 잘못하면 제가 끝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나 이대로 음악을 못하게 되면 어쩌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망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면 돌아보고 나를 다시 일으켜줄 일종의 타임캡슐이나 ‘나중에 위기 상황에 열어볼’ 사부님의 비기 같은 존재로 만든 곡이에요. 두 에너지가 컸죠. 로컬과 외로움.

 


 

 

5. 정규앨범 수록곡 이야기

 

자연이라는 게 섬세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활기가 넘치고 에너지가 있기도 하잖아요.”

 

빅나인: 방금 얘기한 <무당벌레> 등을 수록곡으로 포함해 올해 그렇게 정규앨범이 나왔어요. 맨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단편선 님에게 전화로 프로듀싱을 부탁했잖아요. 그 다음부터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전유동: 앨범 구상은 2018년에 이미 잡혀 있었어요. ‘인천의 포크’ 작업을 시작하면서 정규앨범에 관한 구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던 상황이고, 처음에는 데모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데모를 만들던 중에 권형 님이 얘기를 넌지시 하더라고요. <주안>에 대한 편선 님의 평가가 되게 좋다고,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아, 그렇구나.’ 하고 있던 차에 ‘모두의 동요’ 작업할 때 다시 편선 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 거죠. 그래도 그때까지는 조금 반신반의했어요. 편선 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했던 게 아니라 내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그냥 돈을 아예 들이지 않고, 홈레코딩으로 다 끝낼까 싶기도 했어요. 이번에 앨범을 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괜찮을까?’, ‘이렇게 내는 게 맞을까?’ 제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한 거죠. 그러다가 주위에서 권유를 많이 하고 힘을 북돋아줬어요. 그래서 편선 님께 연락을 하게 됐어요. 편선 님께 연락을 하던 당시에도 앨범 타이틀이나 곡 리스트는 어느 정도 잡혀 있었어요. 말씀해주셨다시피 ‘4월이라는 이름의 초상화’ 이후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히 뚜렷해지는 느낌이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남들에게 수다 떨듯이 말하던 이야기와 주제들’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아주 손쉽게 수록곡 리스트가 만들어졌어요.

 

빅나인: 그렇게 완성된 정규앨범에 많은 아티스트가 말을 보탰어요. 라이너노트를 쓴 천용성 씨부터 이한철, 이호석, 송재돈 씨까지요.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라는 느낌이 물씬 들더라고요.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대부분 미리 구상에 있던 곡들이다 보니 다른 것보다 프로듀싱 방향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단편선 님과 프로듀싱에 관해 나눈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나요?

 

전유동: 제가 편선 님께 연락을 하기 전에 한 가지 각오를 하고 전화를 드렸어요. 모든 결정과 권한을 거의 다 넘기자고요. 그리고 나와 조금 상반되는 의견이 나와도 따르자는 것이었죠. 그런 결심을 하고 전화를 드려서, 편선 님이랑 작업이 굉장히 재밌었던 것 같아요. ‘알아서 하세요. 저는 아무 것도 안 할래요.’ 이런 생각이었다기보다는. 물론 그렇게 비춰질까봐 걱정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요. (웃음) 아무래도 편선 님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편선 님이 의도한 부분들을 따라 갔던 것 같아요. 일단 만났을 때, 편선 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이 있는데 “유동씨가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저도 음악을 했던 사람이지만, 프로듀서로서 유동 씨의 음악을 대할 때는 전과 또 다르다. 유동 씨의 음악을 하나의 상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혹시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는 프로듀서이고, 상품을 시장과 소비자들에게 잘 맞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가갈 거다.” 하셨는데, 그 말 듣고 더 믿음이 갔어요. (웃음) 그래서 저 역시 편선 님을 무한 신뢰하고 또 앞으로도 그러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나요.

 

 

빅나인: 그러면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 중 먼저 발표했었던 곡들 있잖아요. <무당벌레>,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따오기(36Y)> 같은 곡들이요. 이 곡들이 정규에 실리면서 편곡이 바뀐 건 편선 님의 아이디어인가요?

 

 

 

 

전유동: 네. 예를 들어 ‘인천의 포크’ 때 발매했던 <무당벌레> 같은 경우 처음에는 약간 슬픈 기도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끝이라고 생각이 설사 들어도, 절대 끝이라고 생각하지마. 지금은 외롭고 힘들지만 괜찮을 거야.’라고 다짐을 하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앨범으로 낼 때 편선 님은 그 안에서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기도를 원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자연이라는 게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활기가 넘치고 선명한 에너지가 있기도 하잖아요. 편선 님이 그런 것들을 봤던 것 같아요.

 

youtu.be/AKZ_z8zwaAY

로킹한 편곡이 도드라지는 라이브 <무당벌레> @온스테이지


빅나인: 후반부 더 록킹한 편곡이라다든지, 코러스가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전부 그런 맥락이었겠군요.

 

전유동: 네.

 

빅나인: 이 곡을 선공개 곡으로 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을까요?

 

전유동: <무당벌레>의 편곡이 워낙 드라마틱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전 곡과 이번 곡을 비교하기도 쉽고, 확실히 이번 앨범의 에너지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곡이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선공개 곡으로 선택을 했죠.

 

 

빅나인: 앨범 첫 곡 <참새는 귀여워> 속 참새 소리들은 인천 대공원에서 채집한 소리들이죠?

 

전유동: 네. 아침이면 그 곳에 참새들이 참 많아요. 그 소리를 녹음하려고,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노트북, 마이크를 들고 무작정 아침에 인천대공원에 갔어요. 거기서 참새들 많은 곳을 찾아다녔죠. 아침 8시경이었을거에요. 참새들이 노는 옆에 머무르며 촬영도 하고, 녹음도 했죠.

 

 

 

 

 

빅나인: <참새는 귀여워>가 인트로 같은 느낌의 곡이라면, 사실상의 첫 곡은 <이끼>라는 느낌이 강해요. 책에도 <이끼>가 제일 처음에 실렸어요. 가사가 워낙 슬프기도 해요. “난 네가 있던 흔적이야.”, “나는 너를 지우기 위해 살았을까”. 이 곡을 첫 곡으로 한 이유와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요?

 

전유동: <이끼>도 남산 한옥마을에서 썼던 곡이에요. 말라가는 이끼를 보면서 ‘재는 어떤 생각을 할까?’ 하면서 썼던 곡이죠. 워낙 슬프고 잔잔한 곡이라서 그냥 앞에 뒀던 것 같아요. 모든 곡들의 데모를 다 들어보고 편선 님이 순서를 짜주셨어요.

 

 

 

 

빅나인: 아무래도 가장 잔잔하고 슬픈 곡으로 시작해 <무당벌레>를 거쳐 감정이나 메시지가 드라마틱하게 나아간다는 인상을 줘요. 그리고 또 재밌게 들었던 곡이 <그 뻐꾸기>예요. “검은등뻐꾸기 참 보기 힘들다”, “검은등뻐꾸기는 생김새로는 그냥 뻐꾸기와 구별이 어렵다.”, “오로지 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이 가사가 되다니. 새를 좋아하시고 그런 정보를 접하는 게 취미인 전유동 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노래 같아요.

 

전유동: <그 뻐꾸기> 같은 경우 원래 수록곡이 아니었어요. 앨범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만든 곡이었어요. 그래서 곡을 다 만들고나서 “편선 님, 이거 넣으면 안 될까요?” 물었더니, 다행히 좋아해주셨어요. “이거 뭡니까?” 이러면서. (웃음) 저답지 않게 발랄한 곡이어서 의미가 있기도 해요. 한 번쯤 그런 곡을 써보고 싶기는 했거든요. 사람들이 박수치며 공연을 같이 감상하는 곡이 제게 없어서, 다른 공연장에서 신나는 곡을 들으면 사람들이 박수 쳐주는 무대가 부럽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곡을 쓸 능력이나 감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 곡을 쓰게 되어서 저도 스스로 놀랍고 신기하기는 했었죠.

 

빅나인: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카눈, 파두, 라우드처럼 신기한 악기들이 많이 쓰였어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다양한 악기와 사운드 메이킹을 담당한 기타리스트 파제(Pa.je)님

 

 

전유동: 파제님과 함께 작업을 하다가 그 곡 자체의 분위기가 어느 나라인지 특정할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음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기타 편곡을 하던 파제 님이 “어차피 집에 민속악기들이 있고, 다른 나라 악기들이 좀 있는데 넣어보는 게 어떻겠냐?”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요?” 했더니 바로 쳐서 보내주시더라고요. 들어봤더니 너무 좋아서 그대로 확정을 지었어요. 사실 그 곡을 만들면서 서양에서 뭔가 아시아의 이미지를 차용할 때 중국, 일본, 한국이 이상하게 짬뽕이 되잖아요.

 

빅나인: 오리엔탈리즘처럼요. (웃음)

 

전유동: 그래서 저도 약간 그런 짓을 한 게 아닐까? (웃음) 뭔가 아이리쉬 음악 느낌도 내고 싶었던 것 같고, 다른 느낌도 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그런 생각과 걱정이 들더라고요.

 

빅나인: 애초에 이 노래가 특정한 원본을 상정했거나 그러한 이미지에 대한 텍스트, 상징을 얹은 건 아니니까요.

 

전유동: 네, 맞아요. (웃음)

 

정규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의 타이틀곡 <75데시벨> M/V

 

빅나인:타이틀 곡<75데시벨>은 매미 소리의 데시벨이지요?

 

전유동: 네.

 

빅나인: 뮤직비디오 촬영은 어땠나요? <무당벌레>와 <75데시벨>에 둘 다 직접 출연하셨어요.

 

전유동: 사실 전 영상에 제가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가 싱글로 나왔을 때 뮤직비디오도 촬영감독 님께 요청했던 제1원칙이 제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저만 안 나오면 다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편선 님은 “유동 씨가 나와야 합니다. 꼭 나와야 합니다.”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됐어요. 첫 번째 <무당벌레> 작업할 때는 굉장히 재밌었어요. 편선 님과 파제님, 그리고 건반치는 복다진 양이 같이 도와서 촬영을 했는데, <75데시벨> 뮤직비디오 찍는 것은 좀 순탄치가 않았어요. 화창한 날에 계속 하고 싶었는데 장마철이 겹쳤거든요. 그런데 뮤직비디오를 제출해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있고, 시간이 너무 안 맞아서 그냥 흐린 날에 하기로 했어요. 비가 오는 날에 실내만 촬영을 하고, 흐린 날에 급하게 촬영하게 됐어요.

 

빅나인: 우여곡절이 많으셨네요.

 

전유동: 네. (웃음)

 

빅나인: 타이틀 곡 얘기를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매미 울음소리의 의미

 

전유동: <75데시벨> 같은 경우 다른 곡들보다 좀 더 간절한 기도가 들어갔어요. 이 곡은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만든 곡이었거든요. 그래서 비교적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수록곡 중 하나에요. 도시의 소음들 때문에 매미들이 더 크게 울잖아요. 자기들 소리가 묻힐까봐. 그리고 8년 가까이 땅 속에 묻혀서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하기도 했죠. ‘밖은 어떤 곳일까?’,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왠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빅나인: 자기 자신을 떠올리셨군요.

 

전유동: 네. 그래도 매미가 한철 울고 사라지지만, 다시 또 1년이 지나면 다시 노래가 이어지니까 제 음악도 계속 그렇게 이어졌으면 했어요. ‘당장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열심히 하다 보면 다시 또 내 음악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인 거죠.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안될 거라 말했지만”이라는 가사도 나오듯이 제 상황을 매미의 생태에 많이 대입해서 쓴 곡이라 애착이 많이 가요.

 

 

전매미와 정따뜻 인터뷰 현장

 

 

빅나인: 유동 님 곡들은 자연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전적인 이야기로 잘 녹여내는 것 같기도 해요. 반면에 마지막 곡 <딱딱한 열매>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유일한 곡인데요. 앞으로도 이런 곡을 쓸 생각이 계속 있으신가요?

 

전유동: 생각은 있어요. 생각은 있는데, 이것 때문에 너무 매몰되거나, 이런 걸 꼭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 받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런 곡을 쓰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계속해서 쓰려고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6. 못다한 앨범 이야기

오빠, 이건 남들이 봤을 때 너무 장난처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빅나인: 그렇게 앨범이 나왔는데 피지컬의 경우 CD가 아닌 책으로 발표하셨어요.

 

전유동: CD를 내려고 하긴 했는데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거든요. CD를 줘도 “CD-ROM이 없다.”, “ODD가 없다.” 이런 얘기들요. “들을 방법이 없네? 그냥 내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서 들을게.”라고 하는데, CD를 주는 사람이 뭔가 짐을 주는 느낌인 거예요. 그렇게 CD를 못 듣는 상황인데도 CD 한 장에 고마워해주시고. “아, 그냥 주시는 거예요?” 하면서. 아, 저는 CD를 팔 수 있는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피드백해주시거나 너무 잘 들었다고 해주시는 분들에게 하나씩 공연장에서 나눠주고는 했거든요. 어쨌든 이런 시대 상황인데도 고마워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CD를 내는 게 맞나 고민은 했었어요. 그렇다고 아예 안 내자니 아쉽기는 하고.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안 계셔서 그런지, 더 짐을 드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르면 이왕 드리는 김에 더 의미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2018년도 말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 2017년에도 그런 생각은 했었거든요? 내 노랫말들을 모아 놓은 것들을 한 번 써보자는. 그때 당시 ‘유니커즈’로 활동하고 있던 선우(강선우)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나는 음악이 문학이랑 결합되는 것을 목표로 해보고 싶어.”라고 했는데, “형이 얘기하니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 얘기로 눈이 번쩍 띄었어요. “아, 다른 사람이 이렇게 느끼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각오를 다잡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된 거죠.

 

 

글과 그림이 함께 담긴 피지컬 음반 <관찰자로서의 숲> 2020년 作

 

 

빅나인: 글을 남기신 방식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전유동: 곡을 쓰면서 가사를 먼저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가사를 곡 구성에 맞춰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쓰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정리하니까 라이너노트도 되고, 글밥이 완성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써야지?’ 하면서 모아뒀던 글과 습관들이, 이번에 책으로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된 거예요. 노래를 듣는 이들의 상상력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관해 좀 더 전달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됐어요. 원래 그 전에 책 말고 뮤지션들의 자조가 섞여 있는 상징으로 냄비받침을 (웃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마치 굿즈처럼. 냄비받침에다가 QR코드를 넣을 생각이었어요. 원래 CD나 굿즈를 줄 때 냄비받침으로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웃음) “아예 써라.”, “냄비받침으로 써라.” 하는 자조적인 리워드로 준비한 거죠.

 

빅나인: 뜻밖에 너무 좋은데요? 볼 때마다 생각나기도 하겠고요. (웃음)

 

전유동: (웃음) 맞아요. 실용적이잖아요. 계속 쓸 수 있고요. 그런데 음…

 

빅나인: 아무래도 첫 정규앨범이기도 하고.

 

전유동: 네. 첫 앨범인데, 주변의 사람들이 너무 장난스럽게 가는 것 아닐까 하고 걱정하더라고요. 건반 치는 다진이가 “오빠, 이건 남들이 봤을 때 너무 장난처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오빠가 처음부터 B급 감성으로 음악을 하고, 활동을 했다면 모르지만, 평소에 무척 진중한 척 하다가 그런 식으로 하면 이건 희화가 아니라 그냥 비아냥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건 다른 사람 쓰게 놔두고 나는 예전부터 하고 싶던 책을 내자고 마음을 먹어서 책을 내게 되었어요.

 

빅나인: 정규앨범을 내고나서 코로나 때문에 공연은 못했지만, 사람들과 작업 공유하는 걸 알게 되어 좋았다고 했잖아요. 팬들의 피드백을 많이 받은 것도 좋았고. 이번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다음 작업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까요?

 

전유동: 아무래도 미칠 것 같아요. 그냥 단순히 생각만 해도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게 좋겠죠. 혼자 할 때와 같이 할 때의 간극이 제일 잘 느껴지던 순간이 있어요. 이번 발매 때 쇼케이스 공연도 굉장히 크게 했었고, 코로나 탓에 인원은 적었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큰 공연장에서도 해보고. 게다가 편선 님 있는 오소리 프로덕션에서 진행하는 ‘오슐랭 가이드’ 공연에 함께하기도 했는데, 그때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게 너무 안 떨리는 거예요. 제가 하나도 안 떠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공연할 때도 관객에게 제 본연의 모습이 더 전달이 잘 되더라고요. ‘옆에 믿음직한 사람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에너지가 나오는 거구나’ 확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전유동이 소속된 레이블 오소리웍스의 첫 번째 레이블쇼 <오슐랭가이드>

 

 

전유동: 그런데 오슐랭 가이드 공연에 이은 공연이 빵에서 혼자 하는 공연이었는데 그건 떨리더라고요. (웃음) ‘아, 이게 생각보다 차이가 크구나.’ 실감한 거죠. 도중에 드럼에 박재준 군과 베이스에 송현우 씨가 함께하게 되었는데, 두 분이 워낙 잘하셔서 제가 주문할 게 많이 없기도 했어요. 그래서 믿고 맡기게 된 거고요. 박재준 군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예전에 활동을 할 때에는 곡을 만든 사람이 이것저것 주문을 해서 자기 색깔을 내보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는 뭔가 내 색깔을 내볼 수도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그런 고마운 얘기를 해줘서 더 마음 편하게 믿고 맡길 수 있었어요. 백업이 확실히 되어있으니까 공연할 때 저도 신났고요. 편선 님과의 관계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 저는 믿고 가겠습니다’ 이런 기분이었죠. (웃음) 편선 님이랑 얼마 전에 얘기할 때에도, 제가 앨범작업을 하면서 편선 님에게 제 의견을 개진했던 적은 딱 세 번 뿐이거든요. 그런 걸 감안하면 정말 확실히 제가 편선 님을 믿고 의지하기도 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함께 하는 작업이 되게 재밌었어요. 모난 사람들 없고 전부 다 좋은 사람들이라서 작업하기도 훨씬 좋았던 것 같고요.

 


 

 

7. 앞으로의 계획

 

적당한 지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아둥바둥하는 거니까요.”

 

빅나인: 언급하신 복다진, 박재준, 송현우 님 등 오래 작업해오신 분들과는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함께했나요?

 

전유동: 다진이 같은 경우 제가 서울에 와서 세 번째 오픈마이크 할 때였을 거예요. 언플러그드 오픈마이크에서 다진이가 진행을 했었고, 그 당시 다진이는 다른 팀으로 활동하면서 그게 첫 활동이었는데, 그때 처음 만나게 되어서 공연장 갈 때마다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어요. 그리고 재준이와 현우 씨 같은 경우는 다진이랑 학교를 함께 다녔던 선배들이었고요. 그래서 소개로 알음알음 알게 되었어요.

 

빅나인: 나중에 함께 팀을 이루는 것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전유동: ‘전유동과 얼굴들’처럼요. (웃음) 사실 지금 함께 하는 파제 님, 다진이, 재준이, 현우 씨도 각자 활동과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제가 그들과 팀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진작에 했어요. 왜냐하면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워낙 훌륭하고, 잘 하고, 자기 음악 색깔도 확실하게 있는 사람들이라서 구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어요.

 

빅나인: 지금 인천에 살고 있고,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대구와 경북이라는 로컬 신에 대한 고민을 놓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역신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까요?

 

전유동: 그렇죠. 그런데 거기서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게 있어 대구는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곳이에요. 지금 서울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대구 공연을 계획하고 있기도 해요. 대구 클럽 헤비에서 공연을 하는데요. 정규앨범 텀블벅 당시에 대구 분들이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리워드에 쇼케이스가 있는데도, 서울이 공연장이라서 못 오셨던 분들에게 얼마 전에 문자를 보냈거든요. 초대권을 드릴 테니 오실 수 있냐고. 현재 참석 여부를 취합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어쨌든 제게는 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대구 단독공연 포스터

 

 

빅나인: 지금 로컬 신에 가장 시급히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이런 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것 말이에요.

 

전유동: 지금 제 환경을 보며 대구를 바라보면, 그 당시에는 지원 사업 같은 것들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음악창작소에서 정규앨범, EP, 싱글 이런 것들을 매년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코로나19 국면도 있고 한 만큼, 음반 제작 뿐만 아니라 좀 더 다방면의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음악 분야를 ‘음악창작소만이 아니라 대구문화재단에서도 좀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문화재단 같은 경우 주로 순수예술을 많이 지원하다 보니까. 물론 순수예술 분야 아티스트들도 힘들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어요. 공연을 한 번 하면 대규모로 해야 하고, 관객도 많이 필요하고요. 아무래도 그런 성격의 공연들이다 보니까 ‘순수예술 말고 대중예술, 대중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들끼리 돈 없어도 어떻게든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들은 보니까 집에서 녹음도 하더라.’ 이런 식으로요. 이런 인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적당한 지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아둥바둥하는 거니까요. 어떻게든 그렇게 해나가고 있는 음악 신들을 조금 진지하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대구를 ‘문화의 도시’라고들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큰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같은 순수예술이 무척 멋있고 중요하다고들 생각해요. 그런데도 이곳이 그나마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서울 다음으로 큰 신이라고 한다면 말 다 했죠. 그만큼 열심히 하려고 하고, 멋진 음악들이 탄생할 수 있게 조금 더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122 단독공연 @대구클럽헤비 (Photo by Moolrin)

 

 

빅나인: 마지막으로 ‘전유동’이라는 뮤지션은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가요? 향후 계획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전유동: 일단 제가 원하는 전유동의 모습은 실명으로 활동을 하게 된 만큼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게 계속 제 얘기를 할 수 아티스트예요. 너무 겉멋이나 이런 것에 취하지 않고, (물론 저는 겉멋 꾸미는 것도 중요하고 지금 제게 아주 시급한 문제지만.) (웃음) 좀 치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모습을 치장할 수는 있어도, 음악은 절대 치장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겸손하게. 하다못해 길가에 쓰레기도 많이 버리지 말고, 남들이 보면 큰일나니까. (웃음)

 

빅나인: 전유동의 이름을 걸고-

 

전유동: 네, 제 이름을 걸고 그렇게요. 지금처럼만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아까 말했다시피 ‘너무 자연친화적이다.’, ‘목가적이다.’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저의 창작 스펙트럼을 좁히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또 다른 향후 계획은 편선 님께서 큰 공연 때마다 세컨 기타로 열연을 해주고 계신데, 그게 너무 감사하면서도 죄송하거든요. 그 분이 제 옆에서 그렇게 백업 기타를 치실 분이 아니데. (웃음) 너무 공연 때마다 즐겁게 쳐주고 계세요. 정말 감사하지만 편선 님이 안될 때에는 차기 후보를 빨리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편선 님을 놓아드린다는 뜻이기보다 ‘적합한 백업 기타를 빨리 구해서 위신을 지켜드리자.’ 이런 게 있는 거죠. 그리고 이왕 편선 님 덕분에 평소에 하던 포크와는 다르게 록 음악을 결합했고, <그 뻐꾸기> 같은 경우 이전에도 했던 샘플링 음악을 본격적으로도 해봤고, <The Beetle> 같은 경우 또 발라드였어요. 편선 님이 계속 임창정처럼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웃음)

 

빅나인: 맞아요. 엄청 열창하셨잖아요. (웃음)

 

전유동: 네. 그런데 그 정도는 막상 못했던 것 같고. (웃음) 아무튼 스펙트럼을 이왕 넓힌 거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향후 계획입니다.

 

빅나인: 말씀처럼 앞으로 더욱더 다양하고 멋진 모습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긴 시간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스케치 영상 (제작 촬영 by 김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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