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송곳』

[음반리뷰] 오늘도 무사히 「송곳」

< 앨범 정보 > 

Artist : 오늘도 무사히

Tile : 송곳

Release : 2019-02-26 

Genre : 포크, 인디

Label : (주)KOBUKO

Format: LP

 

Track List

1. 늙은 꽃
2. The Satellite
3. 언저리에서
4. 나의 배역
5. 이런 게 외로움이구나
6. 그대로
7. 요즘속담
8. 남조선블루스 

Sound Like : 포크를 좋아하는, 한국 인디 포크씬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차준우)

For fans of : Jeff Buckley, 이장희, 김대중, 이영훈 (서대구)

 

< 빅나인 필진 리뷰 >

차준우 (열탕) / 앨범 이름처럼 청자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송곳 같은 포크 뮤지션이 탄생했다. 한국 인디신의 포크 음악에 선입견을 갖는 모든 이가 꼭 들어야 할 음악. 결국 당신은 이 음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더 빨리 듣는 편을 추천한다. 리뷰 란의 만점이 5점에 불과한 것이 유감이다. ‘언저리에서’ ‘나의 배역’을 추천.

 

샬롯무어만 (열탕) / "오늘도 무사히"의 공연을 처음 봤던 때가 떠오른다. 부드러운 연주에 느린 전개로 이뤄진 곡들만이 이어졌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이고 보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거기에 공기를 휘어잡는 고요한 카리스마는 어떠했는가. 공연의 모든 부분에 격렬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나는 "오늘도 무사히"의 정규앨범 출시 소식을 듣고, 앨범이 딱 그 때 그 공연 느낌만 잘 살린다면 명반이 나오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접해본 이 앨범은, 내가 그 공연을 처음 봤을 때 느낌, 딱 그대로였다. 이 앨범의 CD를 처음 받아보고, 가사를 대충 훑어봤을 땐 숨이 턱, 막혔다. 이토록 지독한 고독과 날선 냉소라니. 이 앨범을 감당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들으면서 느꼈다. 음악의 힘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가사의 답답한 느낌을 풀어주는 건 역시, 보컬의 음색과 악기들의 연주였다. 가사가 음악을 만나, 지독한 고독은 부드러운 호소가 되었고, 날선 냉소는 유쾌한 농담이 되었다. 이 앨범 커버를 보면, 뒷면은 어두운데 앞면으로 갈수록 조금씩 밝아지는 그라데이션이 포함되어있다. 이 앨범의 전개가 딱 앨범 커버를 닮았다. 

앨범의 도입부를 담당하는 1번 트랙 "늙은 꽃"과 2번 트랙 "The Satellite"는 커버 뒷면처럼 지독한 음색으로 사회 속에서 고통 받는 자아를 그린다. 그러다 3번 트랙 "언저리에서"로 들어서며 사회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진다. 4번 트랙 "나의 배역"에선 화자가 자아 속으로 좀 더 깊이 침투하면서, 곡이 더 고요해진다. 5번 트랙 "이런 게 외로움이구나"에선 깊이 들어갔던 자아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준비를 하는 화자의 심정을 다룬다. 가사만 보면 화자가 밖으로 나오고자 결심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곡이 후반부 들어서면서 격렬해지는 구조를 취할 때, 화자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6번 트랙 "그대로"는 내가 뽑는 이 앨범의 백미다. 자아가 겪는 고독과 밖에서 맞이하는 불안한 희망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화자가 자아 속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밝아진다. 밝아지는 내 기분은 앨범 커버에 앞면으로 가면서 밝아지는 그라데이션을 연상시킨다. 7번 트랙 "요즘 속담"과 8번 트랙 "남조선 블루스"의 가사를 보면, 화자가 다시 세상의 한계를 느끼고 세상을 향해 냉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냉소를 밝은 음색과 화려한 편곡으로 유쾌하게 환기시킨다. 음색으로 유쾌하게 환기된 분위기가 화자에게 아직은 세상을 맞이할 힘이 충분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어, 괜히 화자를 응원하며 미소 짓게 된다. 

벽에 박힌 작은 송곳이 커다란 액자를 지탱하듯이, 작은 송곳의 힘은 크기에 비해 이토록 강력하다. 이 앨범의 제목은 "송곳"이다.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들이 내 마음에 송곳처럼 박혔다. 보컬은 부드러운 음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고, 곡 전개도 처음부터 끝까지 슬로우템포를 고집하지만, 41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날을 많이 세우지 않아도, 작은 송곳만으로도 듣는 이의 마음을 관통한다. 그러나 그 관통은 아픔만 주지 않는다. 오히려 찢어진 곳을 다시 봉합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는 송곳처럼, 이 앨범을 들을 때 찢어진 마음이 봉합되는 것 같은 치유를 느낀다. 음악의 힘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뮤지션의 영리한 작품이다. 이 뮤지션이 자신의 예명처럼 언제나 "오늘도 무사히"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

 정병욱 (열탕) / 예술은, 아니 음악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 편한 탈출구일까. 물론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잠시 잊었던 숨 막힌 일상과 각박한 사회로 다시 들어서게 하는 잔인한 톨게이트가 되기도 한다. 

본작은 아티스트의 이름 그대로 그저 오늘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안일하고 근시안적인 기도가 아니다. 도리어 앨범 제목처럼 일상의 괴로움과 현실의 비정함을 푹푹 찔러 오늘과 내일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감한 송곳이다. 앨범 「송곳」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현실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다시 재입장 하는 회전문처럼 누구든 오늘도 무사히가 그려낸 현실의 가상에 빙그르 되돌아 다가서게 한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때로 자조를 섞어 처절하게 풀어놓는 앨범 수록곡의 가사들이, 오늘날 그 어떤 대중음악이나 과거 포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완성하는 덕분이다. 물론 가사만이 아니다. 오늘도 무사히가 중성적인 음색으로 오가는 나지막한 가성과 한 서린 절규 사이에는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도 되지 못한 경계적 청년의 비육지탄이 알알이 박혀 있다. 

무반주 위 한 서린 보컬과 북소리만 얹은 ‘늙은 꽃’의 인트로부터 듣는 이의 가슴에 차갑게 내리 꽂힌다. 뒤이어 어느덧 풍성하게 소리 공간을 채우다가 어느새 가사에 맞추어 여운까지 남기는 보컬의 섬세함과 목소리보다 더욱 처절하게 울어대는 전휘영의 아쟁은, 이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가 되는 데 일조한다. 타이틀 ‘나의 배역’은 어떤가. 차분한 아르페지오에 담긴 쓸쓸한 서정, 고독사한 연극배우 김운하에 대한 추모와 안타까움이 담긴 가사, 가사의 감정이 절절하게 담긴 후렴의 멜로디와 보컬 전부가 강렬하고 또 온전하게 맞물린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앨범 전면의 개인적 서사로 공동의 서사를 뒤흔든다.

비교적 간편하게 사운드를 매만지고, 단순하게 서정을 풀 수 있는 포크 발라드의 쉬운 접근성은, 지금까지도 이를 수많은 뮤지션의 언어로써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쉬운 선택이 마치 음악마저 가벼울 수 있다는 면죄부가 되거나, 간편한 방법론을 빌어 표현의 무게에 맞지 않는 내용을 적당히 실어 흘려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송곳」은 이 같은 얇은 틈바구니를 뚫고 솟아난 진짜배기 송곳이다. 비슷한 듯 스타일을 조금씩 변주한 외연의 디테일이, 트랙 하나하나마다 꾹꾹 눌러 담긴 내포를 대변한다. 그렇게 완성된 드라마는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늘어놓는 것을 넘어 삶과 음악이라는 간영역적 접합을 이룬다. 일상과 심장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가사와 보컬의 비극적 승화, 이 가운데 여백을 두고 침착하게 듣는 이의 참여를 기다리는 사운드의 겸손한 태도와 흐트러짐 없는 결은, 있는 그대로 현대의 뜨거운 살풀이가 되고 제사가 된다.

몇 년 전 ‘오늘도 무사히’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어제의 안녕과 무사 평안이 이어지길 바라는 관용적 인사치레로 오해했다. 아니었다. 그의 주문은 훨씬 낮은 곳, 더욱더 보편적인 공간을 향해 있었다. ‘오늘만큼은 무사히’, 부디 ‘내일은 무사히’라는 이름으로. 아마도 이 이름은 음악으로 시대를 읊어낸 전설적인 선배들의 이름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RATING >

 + 열탕(8) : ★★★★★★★★
 + 온탕(2) : ★★
 + 미온(0) :  
 + 냉탕(0) : 

 

< 아티스트 인터뷰 >

https://bigninegogoclub.tistory.com/27 (빅나인 사람들 / 오늘도 무사히 편)

저는 「송곳」이 색깔과 정체성이 분명한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송곳같은음악’이라고 제가 표어처럼 얘기하고 있는 이 말이 이 앨범의 주제가 되고 하나로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고 그 문제는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있지 않습니다. 이를 제 송곳(노래)으로 찔러서 드러나게 하고 싶어요.  

 

< 추천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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