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 영업시간] 식목일에 나무는 못 심었지만 권나무는 들어야지

바람이 세게 불지만 참 맑고 햇볕이 따스한 날입니다. 저는 지금 조그마한 서점의 2층에 앉아 글뤼바인(와인에 향신료와 과일을 넣고 끓여낸 음료-뱅쇼-의 독일식 표현)을 홀짝거리며 함께 나온 말린 무화과를 와작와작 먹어치우고 있어요. 제 손에는 오랜 친구가 방금 이 서점에서 골라 선물해준 새 책이 들려 있습니다만 저는 지금 이 책을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 눈 앞에 누가 글리터를 쏟아놓은 양 부산의 바다가 빛을 내고 있거든요. 서점에서 50m 거리에 있는 바다에서 맑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나고, 열린 창가에 앉은 저에게 바람이 그 소리를 또 실어다 주고 있습니다. 글뤼바인을 한 모금 더 머금은 순간 서점 안에서 권나무 님의 3집 <새로운 날>의 첫 트랙인 '빛이 내리네'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아, 저는 결국 직감해버렸어요.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올출[*덕후언어 : 'All+출석'의 줄임말로 덕질대상의 모든 스케줄이나 모든 투어에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의 뽐뿌입니다.

"너에게 가는 길은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빛이 내리네"

여기는 <손목서가>, 4월 27일 권나무의 부산 공연이 열릴 곳입니다. 권나무의 노래 중 '화분'의 가사가 된 시, '식물의 방'을 쓰신 시인 유진목 님이 운영하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이 뜬금없는 글은 권나무 전국투어 홍보글이자 권나무 영업글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권나무는 아주 최고입니다 권나무 짱짱을 외칠 예정이니, 얘 뭐야.. 무서워... 찐 덕후야.... 를 되뇌이며 마지막 줄까지 읽어나간 당신이 끝에는 입덕하기를 바라며, 계속 써 보겠습니다.

권나무 3집 <새로운 날> 발매기념전국투어 포스터

올해 1월 1일, 새해 첫날에 권나무의 3집 <새로운 날>이 발매되었지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기막힌 택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최근에 전국투어 일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번 투어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부산, 대구, 창원으로 경상도를 쭉 도는 루트입니다. 서울은 살짝 빡세지만, 뭐 어때! 권나무님 공연인걸! 나머지는 갈만하잖아? 대구는 어차피 당연히 갈 거였고. 부산 공연은 장소가 정말 기가 멕히고. 창원도 늘 가보고 싶었으니까! 올출의 기운이 온다! 올콘..! 올콘을 뛰자! 라며 의지에 가득 찬 저는 일단 유일하게 티켓오픈을 한 4월 21일의 서울 공연부터 예매하기로 했습니다.

? ? ?

않 뒈 ! !

네, 당연하지만 좋은 음악은 당연하게도 인기가 많지요. 올출은 시작하기도 전에 타의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슬퍼하지 말아요. 대구&부산&창원 예매안내는 ★4월 6일 토요일★에 올라온다고 하니까요. 눈물을 삼키며 글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티켓팅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선좌와 플미의 마귀들은 썩 꺼질지어다. 

딴 소리가 너무 많군요. 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편집장님이 정말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글에는 모름지기 의의가 있어야 하니까 조금 이유를 적을까 해요. 제가 권나무의 음악과 공연을 이렇게 추천하는 이유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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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권나무의 음악을 들은 건 5년 전, 알루미늄 샷시가 달린 4평짜리 춥고 좁은 방에서 혼자 살아남던 시절이었습니다. 정말 아끼는 친구(생각해보니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 저에게 책을 선물해준 바로 그 친구입니다)가 꼭 같이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며 저에게 권나무의 음악을 내밀었어요. 그때만 해도 저는 단조로운 포크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권나무의 음악을 받아 든 저는... 내리 몇 번을 들은 뒤, 권나무님의 SNS로 다급한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혹시 아직 앨범 남아 있으신가요??!? 정말 너무 가지고 싶습니다..!ㅠㅠ' 
그땐 아직 정규 1집 <그림>이 나오기도 전이었거든요. <가내수공업노래제작소>라는, 정말 정직한 이름의 ep를 정직하게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일일이 판매하시던 때였죠. 다행으로 서너 장 남아있던 마지막 분량을 구했고, 이후로 그 노래들에 기대어 힘을 얻은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하나씩 하나씩 마음이 자랄 때
질문이 멈추고 큰 길이 보일 때
끝을 알 수 없어서 다시 흔들릴 때

권나무, '노래가 필요할 때'

갖고 있는 앨범을 모두 꺼내보았습니다. 자랑이냐구요? 당연하죠.

EBS스페이스공감 헬로루키 선정,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 등등, 권나무를 소개할 때 수식할 수 있는 반짝거림은 많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저는 누군가가 저에게 "그래서 권나무 음악은 어떤 음악이야?" 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나무 같은 노래야." 라고 답하고 싶어요. 어떤 노래는 백 년 동안 뿌리를 깊게 박고 자라난, 그 어떤 것에도 상처 받지 않을 듯한 단단한 거목 같고요. 어떤 노래는 바람결 따라 마음껏 휘날리는 어린 나뭇가지 같거든요.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져 내리고 오롯한 가지로만 남아있는 나무의 느낌도,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르른 잎이 빽빽하게 달린 나무의 느낌도 있습니다.

저는 인디음악 전문 방송 <랏도의 밴드뮤직>에서 권나무님이 하시는 라디오 방송을 종종 듣곤 하는데, 요즘엔 동화책을 한 권씩 읽어주시거든요. 그걸 조용히 듣다 보면 권나무의 음악은 마치 유화로 그린- 문장이 많지 않은 그림책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물끄러미 듣고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고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거든요. 마치 그 풍경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요.

권나무의 음악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은 코드에 단순한 기타, 곧게 뻗는 목소리, 부드러운 현악기가 전부이지요. 그 위에 역시 어렵지 않은 단어로 쓰인 단순한 문장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마음을 참... 요동치게 합니다.

몇 년 전 어느 날이었어요. 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제가 음악을 골라 틀고 있었는데, 보통 제가 듣는 세속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거시더라구요.

"이 노래 누구 노래고. 이 사람 나이 많나?"
"내도 정확히 모르는데.. 아직 그냥 청년이실 걸. 와?"
"아니... 젊은 사람이 가사를 우예 이래 쓰노."
"아빠가 듣기에도 가사 좋나?"
"방금.. 저런 건 세상 한창 살아보지 않고서야 생각하기 힘들 텐데. 우째 저런 생각을 했노.. 저런 걸 어찌 알아챘나."

돈이 없는 집에 자란 아이들
싱겁게 먹질 못하네요
· · ·
힘이 없는 집에 자란 아이들
제 눈물 닦을 줄은 모르네요

권나무, '이건 편협한 사고'

아주 단순하지만 삶을 관통하는 명료한 문장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 이후로 아버지는 가끔 권나무를 들으십니다. 역시 팬에게 제일 뿌듯한 순간은 영업이 성공했을 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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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홍보이니만큼 라이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팬이 된 이후로 여러 차례 공연을 다녔는데, 권나무의 음악은 라이브에서도 굉장히 빛을 발해요. 어느 음악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악이 울려 퍼질 때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이 극대화되는 법이니까요.

권나무의 공연장은 유난히 인상 깊은 장소가 많았습니다. 번화가가 아니라 골목 속에 숨겨진 공연장, 아늑한 책방, 바로 앞으로 거대하고 푸르른 무덤의 산이 열어둔 공연장 창 안으로 바람을 흘려주는 작은 공간, 높은 나무 벽이 둘러싼 층층의 공간.... 등등의 그런 곳들이요. 

이번 투어에서 권나무의 음악이 함께 할 장소들 또한 모두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공연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예요.

마리아칼라스홀(서울)

손목서가(부산)

OSAEK_오색(창원)

김광석소극장(대구).  '떼아뜨르 분도'라는 옛날 이름이 더 친숙하실 수도 있습니다.

권나무님은 빅나인고고클럽의 첫 시작이었던 [서울상륙대작전]에도 감사하게 게스트로 함께 해 주셨었는데요, 권나무님 또한 지방에서 음악을 시작했다는 부분에서 서로 어떠한 지점의 의미를 공유하지 않았나 싶어요. 늘 지역의 의미 있는 공간과 여러 예술가들을 소개해주시고 함께 공연을 하시기도 하는 모습에서 많은 배움을 얻곤 합니다.

권나무의 대구 공연은 5월 4일,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의 끝부분에 위치한 [김광석소극장 (구.떼아뜨르 분도)]에서 열립니다. 김광석길 근처에는 소소하게 맛있고 분위기가 좋고 녹음이 짙은 마당을 가진 카페들이 제법 있어요. 5월이 되면 날씨도 완연히 따스할 테니, 가벼운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놀러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대구에서 뵙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생각들로 
나를 가둬 두던 시간들은 
더 소중한 맘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렇게 꿈들이 멀어질 때 
· · ·
비밀스러운 삶 , 
고독한 삶이 아닌 비밀스러운 삶 

권나무, '여행'

p.s 권나무의 대구 공연에서는 대구 뮤지션이 오프닝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합니다.
너무 궁금한데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아, 정말 모르겠네요. 아이 궁금해라! 

 

글·사진 / 뭉치뭄치뭄뭄치
자료사진·영상 출처 / 각 공식 SNS

<권나무> 페이스북 페이지
<손목서가> 페이스북 페이지
<OSAEK>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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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나인고고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