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어도 괜찮은 사람- 즁키리 인터뷰

즁키리의 첫 EP 앨범 <서툶>의 사물들.

 

"마인드맵 하는 걸 좋아해요. 제시어처럼 사물을 하나 정하고요, 스투키는 공기정화식물. 누군가 나를 정화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의 특징을 보고 그걸 펼치는 걸 좋아해가지고. 멜로디를 들으면서 또 새로운 표현이 나오고... 그렇게 해야 곡이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곡들이 보면은 스투키, 현무암, 난로, 다른 곡중엔 보풀, 그런 것도 있어요."

 

 

 

즁키리 <서툶> Track List

 

01 난로

02 스투키(feat. 복다진)

03 (TITLE) 현무암

04 현무암 (Piano ver.)

05 뚜뚜 (Light Ver.) (feat. 개개비삼촌)

 

 

 

 

 

나연: 타이틀곡 「현무암」을, 정말 현무암을 보면서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즁키리: 네. 당시에 (간호사)국가고시를 한 달 앞두고 오래 만나던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시험 치고 보름간 제주도를 그냥 갔어요.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니면서 공연도 하고, 그냥 쉬기도 하고... 한 날은 가만히 앉아서 기타만 치고 있었거든요. 협재해수욕장이었는데 파도가 막 치는 거에요. 기타 아무거나 치면서 그걸 보고 있었어요. 저 바위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게 화산의 잔재물이잖아요. 파도에 쓸리고 구멍이 뚫리고 깎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게 너무 멋있는 거에요. 구멍이 나고 빛도 받고 바래면서도 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연: 한 자리에 있는 거.

 

즁키리: 네. 또 국가고시를 치고 나니까 제 미래를 걱정을 했던 거죠. 나는 음악을 해야 하나, 일을 해야 하나. 어딘가에 소속을 해야 하는 건가. 누가 볼 땐 애매할 수 있는 포지션이지만 이대로 끌고 나가도 나만 잘 버틸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그 곡이 나왔어요. 쓰는 데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진짜 후두둑 나와가지고.

 

나연: 앨범명이 <서툶>인 것도 그렇고, 곡 소개에 보면은 '해결책을 찾기보단 그냥 흘려 보내는 거'. 그게 생각나요.

 

즁키리: 그쵸. 저에게는 제주도가 그게 가능한 공간인 거 같아요. 제주도를 정말 자주 가요. 이틀만 쉬어도, 일박 이일로 갈 때도 있고.. 그냥. 그냥 가요. 이제는 거의 제주도민 수준으로 가요. 대구를 올 수 있어도 제주도를 가게 되더라고요. 가면 아무 생각이 안 들거든요. (나연: 왜 그럴까요?) 렌트를 하고 차를 끄는 순간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요. 45도만 보고 계속 가고... 바다에 앉아서 고민을 해도 그게 고민이 아니고 진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대구나 수원에 있으면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데 제주도에 가면 고민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을 하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런지.

 

 

즁키리의 제주도

 

 

 

나연: 그래서 국가고시는 잘 보셨어요? (웃음)

 

즁키리: 하하. 지금 아주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연: 와 그렇구나. 일 하면서 음악 작업 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세요?

 

즁키리: 음... 핑계대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사실 주변에 그런 시선들이 많거든요. 너는 음악 하는 애 아니잖아. 너는 어차피 간호사잖아. 한편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너 이러다 음악 잘 되면 그만둘 거잖아. 뭔가 소속감이 없는 느낌이 좀 있었는데, 그런 말에 흔들리고 그런 핑계를 대면서 너무 바빠서 음악이 잘 안 됐어, 라든가 음악 때문에 일을 못했어, 라든가.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요. 지금 내린 결론은 둘 다 할 수 있겠다.

 

니연: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정말 녹록지 않으셨을 텐데. 간호사란 직업이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요.

 

즁키리: 처음에 신규 간호사일 때 너무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게 당장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거에요. 내가 까딱 실수를 하면 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에요, 정말. 그게 너-무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그러다가 지금 9,10개월 정도 하고 있는데, 또 사람이 여기에 적응을 하더라고요. 아, 모든 사람은 그렇겠구나. 천재도 처음에는 서툰 게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이거는 이거대로 묻어 두고, 중요한 건 꼭 다음은 있다. 다음에는 더 잘 내야지. 이런 생각으로 일도 하다 보니까 그 고민도 많이 없어졌어요.

 

나연: 맞아요. 즁키리 씨 삶의 태도네요.

 

즁키리: 그렇게 항상 주문을 하는 거 같아요. 나는 잘 하고 있다, 나는 괜찮다... 주변에서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넌 늘 긍정적이잖아. 넌 늘 낙천적이고 다 잘 될 거라고 믿잖아 그러는데, 사실 엄-청 고민 많이 하거든요. 우울할 때도 엄청 많고. 뭐랄까 근데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에이 잘 될 거에요 하고 주문처럼 말해요. 나는 잘 하고 있어. 잘 될 거야.

나연: 그런 생각들이 또 곡으로 나왔겠어요. 아, 「현무암」이 타이틀인 기타 버전 말고도 피아노 버전이 따로 있더라고요.

즁키리: 맞아요. 편곡을 하다 보니까 기타 버전이 너무 무거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그거를 고민할 때 그렇게 무거운 마음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저를 제3자 입장에서 봤어요. 근데 작업을 하고 보니까 제 생각보다 너무 무거운 거에요. 그래서 템포를 조금 빠르게 하고, 조금 산뜻하게 만들자 해서 하나 더 만든 게 피아노 버전. 그냥 감정도 많이 안 넣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나연: 방금 말씀하신 주문 같은 거기도 했네요! 그런데 오, 저는 반대로 느꼈는데. 되게 초연해서 더 슬픈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피아노 버전이.

 

즁키리: 그렇게 말씀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같이 편곡한 형도 그러더라고요. 감정 없이 내려 놓고 부르니까 자기는 뭔가 더 슬프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거요. 그런 것도 좋았어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렇게 받아 주면 그게 맞는 거니까. 

 

나연: 편곡 과정 같은 것도 좀 궁금해요.

 

즁키리: 피아노 버전을 스무 번을 엎었어요. 담담하게 하고 싶은데 그게 표현이 잘 안 돼가지고... 작업을 저희 집에서 했거든요. 좋은 곳에서 좋은 장비로 안하고 싶었어요. 기타도 엄청 오래된, 그리 좋진 않은 그런 기타로 녹음을 했다가, 아, 피아노 버전은 기타를 빼고 그냥 피아노만 가자. 막 왔다갔다. 제 맘대로 안 되는 거죠. 또 엎고, 아 한번만 더 합시다. 인천에서 수원까지 프로듀싱 하는 형이 열 번은 넘게 왔다 갔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곡이기도 해요. 피아노 버전이 완성됐을 때 그 형이랑, 아 더 이상 건드리지 말자면서. 이만하면 됐다면서.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부르라고 하면은 그렇게 표현을 못 할 것 같애.

 

 

오래된 기타

 

 

나연: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요. 가사를 먼저 쓰세요, 멜로디를 먼저 쓰세요, 아니면 같이?

 

즁키리: 무조건 같이 써요.

나연: 무조건?

즁키리: 네. 딱히 뭘 먼저 쓴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제가 마인드맵 하는 걸 좋아해요. 제시어처럼 사물을 하나 정하고요. 스투키는 공기정화식물. 누군가 나를 정화해줬으면 좋겠다. 써 놓고, 멜로디로 그걸 풀어요. 그 안에서. 그렇게 해야 곡이 써지더라고요. 멜로디를 들으면서 또 새로운 표현이 나오고... 그래서 곡들이 보면은 스투키, 현무암, 난로, 다른 곡중엔 보풀, 그런 것도 있어요. 하나의 특징을 보고, 그걸 펼치는 걸 좋아해가지고. 마인드맵도 많이 해 놓고, 베개 뭐 이렇게 해 놓고 그걸 가지쳐서 적어놔요. 그 다음에 곡 쓸 때 펼쳐 놓고 쓰는 거죠.

 

「현무암」 마인드맵

 

 

참고 참고 참았던 내 기억들이

잡고 잡고 잡았던 내 지난날이

이제는 무뎌져 버렸구나

어제는 무너져 내렸구나

즁키리-「뚜뚜」(Light Ver.) (feat. 개개비삼촌)

 

 

 

나연: 기억을 참는다는 게 어떤 걸까요?

 

즁키리: 어제가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 게 많고 그런 거 많이 생각하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다른 방법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잘못했든 잘했든 그걸 잊어야지 한다고 잊혀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어쩌겠어. 그런 마음으로 쓴 곡이 「뚜뚜」에요.

 

「스투키」는, 제가 상경하고 많이 힘들었을 때 집에 혼자 있었거든요. 혼자 고민을 하고 그만둘까. 다 때려치고 내려갈까. 이렇게 안 좋은 생각들도 하고... 스투키가 공기정화식물이잖아요. 당시에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정화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쓴 거죠. 고마워. 하는 마음.

 

따뜻한 저기 남쪽 어느 마을에서

헛헛한 내 마음 달래주려고

차갑게 식어 버린 나의 미움들을

한껏 쓰다듬어 주려 하네

즁키리-「스투키」 (feat. 복다진)

 

 

 

나연: 내 마음과 고민이 곡 하나로 완성된다는 게 어떤 걸까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옛날에는 글로 해결을 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해결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시이고 글이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그게 주는 공허감이 고민인데요, 그렇게 아파하고 파도에 깎이고 그랬던 흔적이 내 정체성처럼 음원이든 시든 하나로 딱 나온다는 게. 공들였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어질 만큼 허무하더라고요.

 

즁키리: 공감이 되는 게, 이번 EP 앨범이 나오기 한 시간 전에 다 철회해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갑자기 허무하고 의심이 드는 거에요. 저에 대해서. 나는 괜찮은가. 내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 당장 한 시간 뒤면 음원이 나오는데 그냥 현실적인 고민부터. 상단에 올라갈까? 나라는 사람이 음원을 낸 걸 사람들이 스쳐가면서 볼 수라도 있을까? 홍보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절대 모르겠지? 홍보를 해도 모르겠지? 별로면 어떡하지? 수천 번을 들었는데도 나왔을때 이상하면 어떡하지, 란 고민을 또 하더라고요. 상명이란 친구랑 한 시간동안 통화를 했어요. 나 진짜 너무 우울하다면서. 공연을 도와주시는 분중에 한수왕 씨랑 클라우즈블록이라는 뮤지션. 이렇게 세 명이랑 통화를 했어요. 그 사람들은 위로를 해 주는 거죠.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늘 제가 하던 말인데 그 말이 별로 안 듣고 싶더라고요. 근데 음원이 발매되고 그게 딱 상단에 떴어요. 사람이 간사한게 상단에 뜨니까 기분이 다 풀려. 아 떴다, 그러면서. (웃음) 그래서 말의 결론은, 별로 고민할 게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일단 하자. 내가 바꾼다고 안 되던 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던 걸 계속 하는 게 더 잘 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나연: 우리한텐 다음이 있으니까요.

 

즁키리: 네. 그게 또 서툴게 내야지는 아니니까. 최대한 열심히 잘 하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하고요. 늘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이런 마음을 안 가지려고 엄청 노력하는 거 같아요. 그 다음에 아무리 잘하더라도 그걸 잊으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거 같애. 이번 앨범은 또 처음이니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많이 시도해 봐야지 하는 생각과 고민을 계속 해야죠. 저는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잘할 수 없잖아요.

 

 

 

 

'어린왕자' 일러스트

 

 

즁키리: 제가 어린왕자라는 책을 태어나서 처음 본 거에요. 일주일 전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왜 어른들은 모든 질문에 답을 필요로 하나. 어른들은 늘 이유가 필요하잖아. 사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 상대한테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지내다 보니까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래서 소중한 사람이 된다.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어떤 컵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계속 그 컵에 마시고 싶어하고. 그런 게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거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랑 늘 같이 가고 싶어하고 뭐하게 되는지 궁금한 게 당연한데, 어떤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왜 이러지? 이유를 찾으려 하고, 그게 집착처럼 여겨져서 잘못됐어, 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싶기도 해요.

 

나연: 사랑. 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데 그게 너무 어렵죠.

 

즁키리: 맞아요. 저는 되게 연애, 사랑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거든요. 엄청 중요하게 생각을 해요. 항상 그것들이 제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니까. 모든 말. 말에 대한 이야기나, 음악이나 글이나 그림은 사랑으로 다 대치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랑에 대해 써야지 하고 쓴 노래가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사랑 노래로 보더라고요. 유독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사랑이라는 건 어디에 갖다 붙여도 다 맞더라고요. 결국은 사랑하려고 사는 거구나. 사랑하면서 행복해지고.

 

나연: 즁키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즁키리: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말로 잘 못하겠어서 노래로 하는 사람. 그래서 저랑 비슷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 제 노래를 들어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나연: 왜 즁키리에요?

 

즁키리: 영어로 하면 즁키 리에요. (나연: 아 그렇구나.) 근데 이름을 만들 때 지금 같은 음악을 하지는 않았어요. 좀 발랄한 스무 살같은 그런 음악을 했어가지고 이름을 장난처럼 지어 보자 하면서 중 말고 즁으로 막 그렇게 했는데, 지금 음악이 달라졌다고 갑자기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사람들도 잘 기억하고, 병원에 선생님들도 그렇게 부르고, 입에 잘 붙는 것 같아가지고. 굳이 바꾸고 싶지 않더라고요. 별 의미가 없어서 사람들이 물으면 창피해.

 

나연: 아뇨 아뇨, 오히려 그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옛날에 장난스럽게 지은 이름인데 그걸 계속 쓴다는 거. 저는 그게 되게...

 

즁키리: 네, 저는 좀 그런 게 있어요. 옛날에 뭘 했다고 그게 창피해서 바꾸고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나연: 과거의 자기를 믿는 거죠.

 

즁키리: 현무암처럼.

 

 

[EP리뷰] 즁키리 「서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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